‘고교 패러다임 전환’ 문 정부 교육공약 1호…정시 늘리며 엇박자

박고은 기자 2024. 1. 24. 09: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의 어제와 오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21년 11월 오전 경기 구리시 갈매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완전히 다른 교실을 만들겠습니다.” 2017년 3월22일, 서울 대영초등학교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의 교육정책 1호 공약인 고교학점제가 ‘완전히 다른 교실’이라는 다짐과 함께 발표됐다. 고교학점제가 이뤄지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커리큘럼을 쥐고 맞춤형 교육을 받는다. 모두 같은 과목을 배우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석차를 매겨 평가해 온 “과거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제도는 아니다. 고교학점제처럼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와 교육과정 다양화를 강조한 교육 철학은 선택과목 도입을 시작한 7차 교육과정(김대중 정부), 영어·수학 무학년제와 학점제(이명박 정부), 문·이과 단순 구분 폐지와 학생의 과목 선택 확대를 꾀한 2015 교육과정 개정(박근혜 정부) 등 20년 이상 이어졌다. 그런데도 교실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7년 11월,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처음 공식화한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계획’은 여러 시도에도 교실이 달라지지 않은 배경을 진단했다. “입시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학생의 진로·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에 한계가 있었다. 교과 과정뿐만 아니라 입시·평가 제도, 고교 체계, 학교운영 체제의 총체적 혁신이 있어야 한다.” 수능을 넘어선 다양한 입시 전형, 상대평가가 아닌 성취평가(절대평가) 등이 함께 이뤄져야 ‘완전히 다른 교실’이 가능하단 얘기다. 진단은 곧 ‘고교학점제는 총체적 변화’일 것이란 약속이기도 했다.

약속이 어긋날 조짐은 2018년 8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부터 고개 들었다. 정부는 각 대학에 정시 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이듬해 이른바 ‘조국 사태’를 겪고, 교육부는 서울 지역 16개 대학에 2023학년도까지 이 비중을 40%까지 올리라고 주문했다. 수능 영향력을 키운 것이다.

대입이 수능에 크게 의존하면, 다양한 이름으로 고교 수업이 개설돼도 그 내용은 결국 수능 대비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성공리에 고교학점제를 시범 운용한 학교 교사들은 “수능이 아닌 학생부와 정성평가를 겨냥해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았다는 점이 고교학점제를 운용하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입시전략을 기준으로 수능에 집중하는 학교와 고교학점제를 통한 정성평가에 특화된 학교가 양분하리라는 전망까지 나온 배경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확정한 ‘2028 대입 제도 개편’은 고교학점제에 있어 학생 선택권과 밀접한 절대평가가 흔들린 시점이다. 고교학점제 취지에 따라 선택과목 내신이 전면 절대평가화될 것이란 전망을 깨고, 상대평가 5등급 점수를 함께 기재하기로 했다. 2020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준비한 전북의 한 고교 교사는 “많이 혼란스럽다. 소수 학생으로 운영하는 어려운 과학 실험 과목이 있는데, 5등급 상대평가를 해버리면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렵단 이유로 아이들이 아예 선택을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줄어드는 학생 수, 그에 따라 한층 필요성이 부각된 개인 맞춤형 교육과 다양한 적성의 존중을 골자로 한 고교학점제의 이상과 충돌하는 정책은 지속하는 모양새다. 지난 16일 시행령 개정이 완료된 자율형사립고와 국제·외국어고 존치는 상위권 학생의 특권학교 쏠림 우려로 절대평가 확대를 더 어렵게 만든다.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의 무전공 선발 규모 확대 또한, 고교학점제가 키우고자 한 ‘특정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보단 ‘일반적 과목을 두루 잘하는 학생’에 유리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대학들마저 고교학점제에 회의적인 모습이다. 서울 지역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한겨레에 “이미 고교학점제와 대입 제도 틀이 어긋난 상황에서, 대학 몇 곳이 선발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것만으로는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안착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