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출신 게임사 대표?…‘겜잘알’ 대신 ‘법잘알’로 위기 뚫겠다는데

황순민 기자(smhwang@mk.co.kr) 2024. 1. 24. 08: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엔씨·넷마블 3월 주총서 법조인 대표 선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P2E·NFT규제등
法리스크 커지자 개발자 수장 대신 법조인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연초 조직개편을 마무리 한 국내 게임업계에서 법조인 출신 인사 중용 기조가 짙어지고 있다.

상반기부터 게임 산업 전반에서 각종 규제가 예고되고, 지식재산권 분쟁(IP) 등 법률 리스크가 커지는 가운데 위기 관리와 돌발 변수 대응을 위해 개발자 중심 리더십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게임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메이저 게임사인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은 오는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법조인 출신 인사를 공동 대표로 선임한다.

엔씨소프트는 창립 이후 쭉 유지됐던 김택진 창업자 단독 대표 체제를 벗어나 김·앤장 출신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를 공동 대표 후보자로 영입했다. 박 대표 내정자는 전체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1982년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엔씨소프트 수뇌부는 법조인 출신이면서도 경영, 전략, 투자 경험이 풍부한 박 대표의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넷마블은 신임 각자 대표에 기획·법무 영역을 총괄해온 김병규 경영 기획 담당 부사장을 승진 내정했다. 김 부사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제4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삼성물산 법무팀, 자비스앤빌런즈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등을 역임한 법률·리스크 전문가다. 라인게임즈의 경우 판사 출신인 박성민 대표가 사령탑을 맡고 있다. 2022년 2월 법복을 벗고 라인게임즈에 합류한 그는 리스크관리실장 등을 거쳐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표이사직을 맡아 각종 현안을 챙기고 있다. 넥슨의 지주사인 NXC는 작년말 이사회를 개편하면서 법조인 출신인 이홍우 전 넥슨코리아 법무실장(NXC 감사)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주요 게임사들이 법조인들을 경영 전면에 전진배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업계를 겨냥한 각종 규제가 시행을 앞두거나 추진되고 있어서다.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대형 게임사 수익성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법제화가 대표적이다. 게임 아이템 획득 확률 공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은 오는 3월 2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안 핵심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시 의무화, 처벌 규정 신설이다. 게임 내 확률 정보를 표시하지 않거나 거짓된 확률 정보를 표시하는 등의 문제로부터 게임 이용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기존에도 게임사들이 자율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해 왔지만 일부 게임사들이 잘못된 확률을 고지하는 등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었다. 지난 3년간 연평균 매출액이 1억 원 이하의 중소기업들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게임사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핵심 수익모델이다.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국내 대형 게임사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규제 시행을 앞두고 게임사들은 수익모델과 플랫폼과 게임 장르 다변화 등 방안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당장 실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내부 분위기다. 법 시행 즉시 제기될 수 있는 각종 사법 리스크와 사업 운영 방침 수립 등에서 법률에 기반한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임업계는 게임법 개정안 뿐 아니라 메타버스 게임산업법, 웹보드 게임 일몰 등 다른 규제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게임 요소가 들어가 있는 메타버스에 대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적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메타버스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온 게임사들은 잇따라 관련 사업을 축소하는 한편 규제 시행에 따른 컨틴전시 플랜 마련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확률형 아이템에 매몰된 게임사들이 새 수익 모델로 낙점했던 블록체인·대체불가토큰(NFT) 기반 ‘돈 버는 게임(P2E)’의 경우 규제 개선이 사실상 요원한 상황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 내 NFT가 게임산업법에서 금지하는 ’사행성 경품‘에 해당된다고 판단하고, P2E 게임의 국내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P2E 게임 관련 제도 없는 상황에서 지난해 법원은 게임위의 판단이 존중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초 게임업계 일각에서 블록체인 게임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나왔지만 지금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분위기다.

게임을 둘러싼 지식재산권(IP)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넥슨과 아이언메이스는 게임 IP ’다크앤다커‘를 놓고 저작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웹젠의 ’R2M‘이 자사 ’리니지M‘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카카오게임즈, 엑스엘게임즈와도 소송 중이다. 게임업계의 경우 게임 시나리오·캐릭터·디자인 소유권, 영업기밀 유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분쟁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게임업계 뿐 아니라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정부 규제와 각종 분쟁에서 법률에 근거해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법률가들이 귀한 몸이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IT업계 전반에 정부 규제와 분쟁이 핵심 리스크로 떠오른 상황에서 법조인 출신 임원 영입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