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현빈 "큰 사건 없이도 술술…'사랑한다고 말해줘' 매력있었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소리 없이 마음을 흔드는, 묘한 드라마였다. 직관적인 제목과 달리 직접적인 고백을 쏟아내지도, 격정적인 사랑을 불태우지도 않지만 섬세한 감성을 건드린 연출로 주인공들의 일상적이고 잔잔한 관계에 의미 있는 파동을 만들곤 했다. 그 한가운데에 배우 신현빈이 있었다.
지니TV 오리지널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일본 TBS텔레비전이 제작하고 키타카와 에리코가 각본을 쓴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원작으로,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정우성)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신현빈)의 사랑을 그린다. 눈빛과 표정을 언어 삼아 마음을 나눈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진한 힐링을 전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가운데, 주연 신현빈을 16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통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흔히 우리가 친구나 애인, 가족들이랑 얘기하다가 '지금 내가 무슨 얘기하는지 들어?' 물을 때가 있죠. 그게 진짜 들었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소통이 된 건지 묻는 거잖아요. 생각해보면 같은 말을 써도 모두와 대화가 잘 통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대충 말해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세히 말해도 몰라주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에 이 대본을 받았어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이 누구보다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소통하는 이야기라서 꼭 함께 하고 싶었죠."
모은의 직업은 배우다.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부터 오디션까지 쫓아다니며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 변수로 가득한 그의 소란스러운 일상에 찾아온 진우는 고요한 위안을 건네며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한다.
"모은은 솔직한 사람이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기도 해요. 대단히 좋은 환경이 아닌데도 스스로를 잘 데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건강해서 좋았어요. 시청자들도 모은의 그런 면을 응원해주신 것 같고요. 다만 직업이 배우라, 실제로 배우인 제가 배우 연기를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요. 심지어 모은은 그렇게 잘 된 배우가 아니니까 연기를 잘해야 하는지, 못해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너무 잘하는데 계속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것도 이상하고 너무 못하면 허황된 꿈을 꾸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했던 거죠. 그래서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톤을 적당히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모은은 청각 장애가 있는 진우와 수어로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가까워진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만큼 타인에게도 편견 없이 다가갈 줄 아는 모은의 단단한 내면은 신현빈의 세밀화 같은 연기와 만나 몰입감을 더했다.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대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오래 바라보면서 소통해야 했으니까요. 조금이라도 시선을 피하면 대화할 수 없었어요. 상대의 표정을 받아서 대화한다는 점이 기존에 해왔던 연기와 완전히 달랐죠. 보통 싸우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예민한 얘기가 나오다가 더 큰 싸움이 되곤 하잖아요. 근데 저 혼자 소리를 내니까 감정을 올리기 쉽지 않더라고요. 수어는 촬영 두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어렵지만 직관적이라 좋더라고요. 모은이 수어를 잘 못하는 설정인데 계속 반복하다 보니 너무 잘해버려서 다시 촬영하기도 했죠.(웃음)"
'사랑한다고 말해줘'만의 느리고 소리 없는 사랑은 작품의 고유한 색깔이자 매력이었다. 요란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온몸으로 사랑을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어떤 연인보다 뜨거웠다. 엔딩에서는 이별의 아픔을 딛고 재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둘의 모습이 그려지며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모은이 처음 진우에게 건넸던 인사를 똑같이 하는 엔딩이 좋았어요. 진우의 고요한 세상에 모은이가 용기내 들어가려고 한 것처럼, 이젠 진우가 모은의 세계로 와서 두 세상이 합쳐지는 게 너무 감동이었죠. 물론 진우가 모은을 사랑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시선이나 표정은 이미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목이 '사랑한다고 말해줘'이지만 말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의 인연이 말 때문에 시작된 건 아닌 것처럼요."
사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쉽게 흥행을 점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서로 경쟁하듯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승부를 거는 시대,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선 작품이었다. 이토록 느리고 깊은 정통 멜로가 끝까지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탄탄한 이야기와 신현빈의 진정성 있는 호연 덕분이었다. '미스트리스', '슬기로운 의사생활', '너를 닮은 사람', '재벌집 막내아들' 등 매번 낯선 얼굴에 도전한 신현빈의 또 다른 확장이다.
"흥행 걱정은 없었어요.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설정이 새롭고 지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서른,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서로 인간적인 호감이 있다고 해도 섣불리 관계를 시작하기 어렵잖아요. 상대를 배려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고요. 그런 느린 이야기를 다루지만 나름의 템포가 있었어요. 큰 사건이 없는데도 술술 흘러가서 집중하게 만든 힘이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 단계를 거치는 사랑의 과정을 긴 호흡으로 그릴 수 있어 좋았고 주변에서도 '하길 잘했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제게도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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