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 노골적 퇴진 압박…환멸 느껴 나왔다”

노형석 기자 2024. 1. 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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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권은 미술관에 대하여 핍박의 칼날을 들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사태가 수시로 나타났다. () 나의 시절은 지나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절인연을 앞장세우고 미술관을 나왔다.""문체부 감사실은 우리 미술관의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인 미국 엘에이카운티 뮤지엄 한국근대미술 전시를 감사대상으로 삼고 관련 직원을 조사했다. () 관장 개인을 털려고 별의별 사안을 다 조사했겠지만 여의치 않으니 직원들을 오라가라 하는 것 같았다."

2022년 2월 21대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재선임된 뒤 지난해 4월 임기 2년을 남겨둔 채 전격 사퇴한 윤범모(73) 전 관장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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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비화 담은 ‘현대미술관장의 수첩’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한겨레 자료사진
“새로운 정권은 미술관에 대하여 핍박의 칼날을 들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사태가 수시로 나타났다. (…) 나의 시절은 지나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절인연을 앞장세우고 미술관을 나왔다.”

“문체부 감사실은 우리 미술관의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인 미국 엘에이카운티 뮤지엄 한국근대미술 전시를 감사대상으로 삼고 관련 직원을 조사했다. (…) 관장 개인을 털려고 별의별 사안을 다 조사했겠지만 여의치 않으니 직원들을 오라가라 하는 것 같았다.”

2022년 2월 21대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재선임된 뒤 지난해 4월 임기 2년을 남겨둔 채 전격 사퇴한 윤범모(73) 전 관장이 입을 열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신의 관장 재임시절 기록 등을 토대로 최근 집필한 회상록 성격의 신간 ‘현대미술관장의 수첩’(예술시대)에서다. 그는 책 1부 ‘미술관장 4년의 회고’에서 윤석열 정권 출범 뒤로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진행된 압박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윤 전 관장은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이 던진 질의에서 ‘공작’의 조짐을 감지했다고 한다. 미술관 담당부서는 물론 관장도 모르는 구입 현황자료를 근거로 특정경매사에 편중되게 작품 구입을 한다고 황보 당시 의원은 비판했다. 문체부 간부인 미술관 기획운영단장이 임의로 행정직원에게 지시해 만든 잘못된 수치의 국감자료가 황보 의원에게 흘러들어간 것이었다.

‘현대미술관장의 수첩’ 표지.

그 뒤 퇴진압박이 본격화했다. 2022년 말 문체부는 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해제 안건으로 운영심의위원회 회의를 갑자기 소집했다가 사전 설명 없이 취소했다. 책임운영기관을 해제하면 기관장을 면직시킬 수 있다는 법률 규정에 따라 운영심의위 회의가 소집됐다는 ‘깊은 뜻’을 몇몇 심의위원들이 눈치채고 자신에게 알려줬다고 윤 전 관장은 증언했다. 지난해 2월엔 미술관 운영심의위를 소집해 애초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은 미술관의 지표별 자체 평가결과를 재평가해 80점대로 대폭 깎는 일도 있었다. 윤 전 관장은 평가점수를 낮추면 관장 면직의 근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문체부는 다각도로 미술관 감사도 벌였는데, 감사 결과를 기관에 먼저 알리지 않고 언론플레이부터 했다고 윤 전 관장은 꼬집었다. 특히 2022년 미국 엘에이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전과 관련해 문체부 감사실에서 자신과 관련 직원들을 집중 조사하면서 사퇴하는 계기가 됐다고 윤 전 관장은 털어놓았다.

“엘에이 건으로 감사실에서 곤경을 치른 학예관은 나에게 함께 사표 쓰자고 충언했다. 뒤로 갈수록 험한 꼴만 당할텐데 무엇하러 그런 꼴을 보려느냐는 내용이었다. (…) 박보균 장관은 앞뒤 사정없이 나의 사표만 관심있었다.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연간 예산이 700억원대가 넘는 외형만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의 거대한 기관을 혼자 책임지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그는 겉으론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수면에 떠 있기 위해 두 발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백조에 비유했다. 김환기나 이중섭의 대표작 몇 점 정도만 기대했다가 1000점 넘는 명작들의 기증목록을 받고 경악한 이건희 컬렉션의 등록과 전시에 얽힌 비화들, 유족 켄 백으로부터 축하편지를 받은 백남준 대작 ‘다다익선’이 해체될 뻔했다 결국 되살아난 이야기 등도 눈길을 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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