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숨통 트인 삼성·SK하이닉스, '증산' 카드 꺼낼까
감산 종료 검토, 'AI 반도체' 집중 실적 발표 관심
작년 한 해는 반도체 업계에 유례없는 '혹한기'였습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시기 비대면·IT 수요의 증가로, 반도체 업계는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수요가 늘어나며 '슈퍼사이클(초호황)'을 맞았죠.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찾아온 경기 침체와 동시에, 코로나19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엔데믹' 시기에 접어들며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요 대응을 위해 제품 공급을 늘린 탓에 재고는 기하급수적으로 쌓였고, 결국 반도체 가격은 계속 떨어졌죠.
최근 들어 반도체 가격이 상승 국면에 접어들면서 시장이 점차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조단위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조금씩 적자 폭을 줄이는 국면이고요. 덩달아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줄이는 '감산' 기조를 완화할 가능성까지도 언급되고 있는데요.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황 반등이 가시화되면 양사의 감산 전략이 대폭 수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AI 뜨자 살아난 반도체
AI의 성장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회복 조짐을 보이며, 부진했던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데요. 특히 AI 반도체에 빠르게 투자했던 SK하이닉스의 전망이 밝습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4분기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 10조4447억원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업황 부진이 시작된 2022년 3분기(10조9829억원) 이후 첫 10조원대 매출입니다.
영업손실 컨센서스는 896억원으로 여전히 적자 상태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다만 지난해 △1분기 3조4023억원 △2분기 2조8821억원 △3분기 1조79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손실 규모가 급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4분기 흑자전환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은 1530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를 상회할 것"이라며 "D램은 완연한 회복세를 전망하며 낸드는 3분기 대비 적자 폭을 축소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속도가 다소 느립니다. 삼성전자 잠정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매출은 67조원, 영업이익은 2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9%, 34.9% 감소했는데요. 다만 영업이익은 3개 분기 연속으로 증가세입니다. 이는 메모리 업황 개선 덕이라는 게 증권가 분석입니다. 메모리 업황이 개선되면서 영업이익이 늘었지만, 파운드리 가동률 부진과 연말 프로모션에 따른 가전·TV 실적 부진으로 실적이 기대에는 못 미쳤다는 것이죠.
서승연 DB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판는 시장 눈높이에 부합하고 메모리 출하는 시장 예상과 가이던스를 큰 폭으로 상회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메모리 영업적자는 전 분기 대비 축소됐으나 시스템 LSI와 파운드리는 가동률 부진으로 전 분기 대비 적자 폭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에 접어든 것도 반도체 업계에 긍정적입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 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1년 내내 평균판매가격(ASP)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상승 폭이 가장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는 올 1분기입니다. 1분기 D램의 경우 전 분기 대비 13~18%, 낸드플래시는 18~23% 오를 것으로 추정되죠.
사실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상승은 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됐습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평균 거래 가격은 전월 대비 15.38% 올랐는데요. 이는 지난 2021년 7월 7.89% 상승한 이후 2년3개월 만에 반등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12월까지 3개월 연속 상승 흐름이 지속되고 있죠.
다만 트렌드포스는 반도체 가격의 연간 상승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공급업체들의 감산 유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봤습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 2022년 4분기부터 감산에 돌입한 바 있고요. 이어 삼성전자도 지난해 4월 진행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감산을 공식화했습니다. 수요 부진이 지속되자 공급을 줄여, 반도체 가격을 올리고 업황을 살리려는 목적이었죠.
트렌드포스는 "올해 메모리 가격 상승의 지속 여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공급업체가 설비 가동률을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올 3분기 공급업체가 공장을 완전히 가동하지 않고, 생산 능력 가동률을 100% 미만으로 유지한다면 D램과 낸드 가격은 계속 상승해 전 분기 대비 8~13% 증가할 수 있다"며 "공급업체가 효과적인 생산량 조절 전략을 유지할 경우 4분기까지도 전반적인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섣불리 감산을 끝내고 생산을 정상화하기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감산을 진행한 덕에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며 시황이 안정되고 있는데, 잘못하다가는 가격 안정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것이죠.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메모리 가격 상승은 정상적 상승 사이클에서의 수요자 주도 상승이 아닌, 감산을 통한 공급자 주도 상승이었다"며 "이를 감안하면 가격 상승 탄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짚었습니다. 감산 종료 후 정상화 돌입할까
하지만 늘어난 수요에 빠르게 대응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감산 완화가 필연적인데요.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감산 종료 시점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특히 양사는 재고가 많은 '레거시(전통)' 제품은 감산을 지속하는 대신,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AI(인공지능)' 반도체는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실제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이같은 전략 변화를 시사한 바 있습니다.
곽 사장은 "제품별 차등을 두고 수요가 강한 부분은 감산을 풀고, 약한 부분은 생산을 줄이는 쪽으로 탄력적 운영할 것"이라며 "1분기에 변화를 줘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최근 시황 개선 조짐이 두드러지는 D램은 생산을 늘리고 수요가 취약한 부분은 계속 조절하는 방식인 거죠.
삼성전자 역시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현지서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미주총괄(DSA) 총괄 부사장도 "HBM 시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기기 때문에 전 세계 수요 불균형이 올 수 있다"며 "이에 삼성전자는 올해 HBM의 CAPEX(시설투자)를 2.5배 이상으로 늘린다고 했고, 내년에도 그 정도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최근 생성형 AI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이번 주 한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AI 반도체에 대한 국내 기업의 수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데요. 생성형 AI 붐으로 AI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오픈 AI가 자체 AI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을 위한 협력사 확보에 나선 것이죠.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오픈AI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협의를 통해 AI 반도체 공급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체 AI 반도체 설계만 중점을 두는 빅테크 업체들과 달리 오픈AI는 AI 반도체의 안정적 조달을 위해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략적 생산시설 구축을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메모리 반도체 공급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파운드리는 TSMC·삼성전자·인텔 등이 유력해 보인다"며 "챗GPT에 탑재될 고성능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삼성전자의 공급망 참여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는 이달 31일과 25일, 구체적인 실적과 함께 감산 전략 등을 공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요. 두 기업이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기대해 보시죠.
백유진 (by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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