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증시 훨훨 나는데 코리아 디스카운트 여전 [한강로 경제브리핑]
미국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에 대한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주식시장도 연초 대비 9% 가까운 상승세를 보이면서 최고가에 근접하고 있다. 반면 코스피는 6거래일째 2400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미국, 일본 증시와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천장 뚫은 다우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직원이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고 있다. 다우지수는 이날 3만8001.81로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AFP연합뉴스 |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22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전장보다 138.01포인트(0.36%) 오른 3만8001.81로 거래를 마쳤다. 다우지수가 3만8000 이상 지수로 마감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S&P 500지수도 전장보다 10.62포인트(0.22%) 상승한 4850.43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49.32포인트(0.32%) 뛴 1만5360.29로 장을 마감했다. 나스닥지수의 역대 최고치는 2021년 11월 기록한 1만6057.44로 현 수준보다 4.5%가량 더 높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시장 기대보다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 연착륙 가능성과 업황 개선 기대감 등이 커지며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끄는 빅테크 종목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메타 등 ‘매그니피센트 7’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일본 증시도 올해 들어 급격히 상승하며 거품 경제 시절인 1989년 말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는 기대감마저 나오고 있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23일 장중 한때 전날보다 350포인트 가까이 오르며 3만6896을 기록했다. 닛케이지수는 올해 들어 지난 4일 거래가 시작된 이후 상승세를 그리며 3400포인트 이상 올랐다.
일본 증시 호조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상승세를 주도하는 것은 해외 투자자”라고 분석했다. 도쿄증권거래소가 공표한 1월 9∼12일 투자 부문별 주식 매매 현황에서 해외 투자자 순매수액은 9557억엔(약 8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이날 올해 첫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정도로 유도하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맥 못추는 코스피 코스피가 전 거래일(2463.35) 대비 13.97포인트(0.57%) 오른 2478.32에 개장한 23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0.58% 오른 2478.61에 장을 마감했다. 뉴시스 |
한국 코스피의 ‘마이너스’ 수익률에는 여러 이유가 꼽힌다. 우선 거론되는 것이 ‘차익실현 매물’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스피는 지난해 연말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단기 급등 여파로 차익실현 물량이 출회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12월의 코스피 수익률은 16.6%로 세계 평균(12.2%)과 미국(13.7%) 주가 상승폭을 넘어섰다. 이외에 국제금융센터는 반도체, 이차전지, 철강 등 대형 수출기업들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4분기 실적을 발표한 것도 주가하락의 원인이 됐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차익실현만으로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12월에 한국 코스피가 많이 오른 건 맞지만, 다른 국가 주식시장도 많이 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발 조기금리 인하 기대심리 차단 효과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연준에서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잇따라 발신되면서 시장에서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약해지고, 안전자산인 달러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30∼1340원대를 오가고 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금리는 ‘선진국’ 시장보다는 ‘신흥국’ 시장에 더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중국경제가 둔화하고 있는 것도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이유로 거론된다. 최근 중국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5개월 연속 동결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어찌 됐든 한국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라며 “중국의 부정적 여파가 있는 것 같다.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주식시장도 안 좋은데, 이 나라들은 원자재 판매 비중이 커서 중국경제로부터 영향을 받는 국가”라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이외에 연초 반도체 관련주들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조정을 받고 있는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이날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가진 ‘취임 1주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올해 첫 번째 핵심과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꼽았다. 서 회장은 “상장기업의 배당성향 제고 및 자사주 매입·소각 등의 주주환원책을 유도하는 자본시장 밸류에이션(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공모 주식형펀드를 포함한 장기 직간접 주식투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또한 적극적으로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식투자자 수는 1441만명으로 2017년 505만명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상당수 국민이 자본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서 회장은 자본시장 관련 세제 인센티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물론 가계의 자산 증가,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가 올해 들어 13% 가까이 하락하면서 이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을 산 국내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홍콩H지수는 세계 주요 주가지수 중 유일하게 올해 두 자릿수 하락률을 보이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증권가는 중국의 경기 부양책 부재로 올해 만기를 앞둔 ELS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는 전날 5001.95로 하락 마감하며 2022년 10월31일 기록한 저점(4919.03)에 근접했다. 2021년 2월 기록한 최고점(1만2271.60)과 비교하면 59% 하락한 수준이다. 이날은 5140.93으로 2.78% 반등했지만 홍콩 증시 하락 추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홍콩H지수는 전 세계 증시 중 가장 저평가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의 12개월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2배로 역사상 최저점 수준이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올해 들어 부진을 겪고 있는 코스피의 PBR은 이날 기준 0.89배를 기록하고 있다.
연초부터 중국 증시가 부진을 이어 가는 이유는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 부재로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2024년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을 중립에서 보수적인 대응으로 하향 조정한다”며 “연초 정책 흐름이 당초 예상했던 기본 가정(재정지출 확대)을 하회하고 있고 이런 대응은 앞으로 투자, 부동산, 수출 등에서 예상치 못한 경기 하방 압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 확대에 외국인 투자자가 중국 증시를 대거 빠져나간 영향도 컸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줄곧 중국의 부동산 부채 문제와 바이든 대통령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법안, 미 국방부, 재무부의 중국 기업 블랙리스트 지정 등으로 중국 주식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에 중국 당국은 2조위안(약 372조원) 규모의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결국 올해 만기가 예정된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의 지수 반등에 대한 희망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홍콩H지수 ELS에 대한 원금손실액만 229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손실률만 52.7%에 달했다.
국내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의 금융사를 상대로 한 민원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이날 무소속 양정숙 의원실이 주최한 ELS 관련 토론회에서 불완전판매가 입증될 시 과거 파생결합증권(DLS) 보상 사례에 따라 피해액의 최대 80%, 최저 40% 수준의 분쟁조정 안에서 배상액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 8일부터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ELS 불완전판매 실태 여부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양 의원은 “금융사고 사태에 대해 금융 당국과 금융사는 사태 책임의 원인을 외면하고 책임 회피를 할 것이 아니라 사태 수습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 나아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번 사태로 ELS 시장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유석 금투협회장은 “ELS 시장이 당연히 축소될 거라고 보고 있다”며 “큰 판매 창구로서 은행권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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