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는 어쩌다 10만원 단위까지 거래되고 있을까?
‘전세 1억6380만원.’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내걸린 전세 매물 가격이다. 익숙하지 않은 숫자다. 과거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10만원 단위는 통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5월부터 임대차 시장을 둘러싼 여러 조건이 변하면서, 이제는 수도권 곳곳에서 10만원 단위까지 적힌 전세 물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전세 매물에는 대개 ‘HUG 보증 가능’ 같은 조건이 달려 있다. 2022년까지 이어진 비아파트(빌라·다가구·오피스텔 등) 전세가 폭등 이후 한국 주택임대차 시장의 문법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각종 전세사기의 여파로 대다수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을 원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적정 임대차 ‘가격’이 정책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2024년에 더 확산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변화로 각종 전세보증금 사고와 전세사기가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10만원대 가격’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하 반환보증) 가입 조건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림〉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반환보증 가입 가능 가격의 변화를 보여준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1동에 위치한 전용면적 42㎡ 빌라의 실제 공시가격과 실거래가를 반영해 그렸다.
2013년에 준공된 이 빌라는 2022년까지만 해도 매매 실거래가 2억8300만원, 전세 실거래가 2억4000만원을 기록했다. 전세가와 매매가의 갭이 4300만원, 전세가율(전세가/매매가)은 84% 수준이다. HUG에서도 이 집의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을 2억4900만원으로 산정해두었다. 이 시기 전세를 구한 임차인은 (비록 깡통전세 위험이 크지만) HUG 반환보증을 가입하고 전세 거래가 가능했다.
2022년까지 HUG의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 계산은 비교적 단순했다. ‘공시가X150%’다. 다시 〈그림〉을 살펴보자. 흔히 ‘빌라’라고 부르는 다세대주택의 반환보증 가입금액은 세 숫자를 곱한 값이다. 공시가격(A)에 적용비율(B) 150%를 곱하고, 여기에 담보인정비율(C) 100%를 곱한다. 2022년 기준 이 집의 공시가격은 1억6600만원, 여기에 150%를 곱한 결과 2억4900만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문제는 2022년 하반기부터다. 각종 전세사기가 발생하면서 HUG의 반환보증 가입 금액 산정 기준이 문제시되었다. HUG가 사실상 공시가격의 150%까지 ‘전세가 상한선’을 정해주는 바람에 전세가가 폭등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팬데믹 기간에 시장에서 임대인들은 ‘어차피 반환보증을 가입하면 전세금은 안전하다’는 이유를 들며 전세가를 높였고, 저금리 환경에서 전세대출도 용이해 시장 전체의 전세가가 급격히 올랐다. 그 결과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2022년 하반기부터 HUG의 대위변제(대신 전세금을 내주는)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HUG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증보험의 가입 요건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여기서 HUG는 두 가지 수치를 조정한다. 〈그림〉에서 적용비율(B)과 담보인정비율(C)을 각각 140%, 90%로 낮춘 것이다. 두 수치는 시차를 두고 적용됐다. 우선 적용비율(B)이 2023년 1월1일부터 140%로 낮아졌다. 〈그림〉에서 예시로 든 빌라는, 이때부터 전세가가 2억3240만원을 넘을 경우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없게 되었다. 〈시사IN〉과 만난 공인중개사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시장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전한다. 집집마다 1000만~2000만원 조정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의 발표 하나가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을 뒤흔들었다. 바로 ‘공시가격 인하’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공시가격 현실화’를 역행했다. 공시가격 현실화란 세금과 보험료 산정 등의 기초가 되는 공시가격을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거래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리는 정책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2038년까지 토지·단독·공동 주택의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공시가격을 올려왔다. 공시가격이 실거래 가격과 유사해질수록, 주택을 가진 사람들의 보유세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특히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는, 고가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부자 감세가 빌라를 흔들다
윤석열 정부는 감세 정책의 일환으로, 이러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무력화하고 다시 공시가격을 낮추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아파트뿐 아니라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공시가격 역시 영향을 받아 2023년부터 하락하게 됐다. 각 가정에서 자신의 집의 공시가격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 바로 2023년 3월이었다.
지난해 3월1일 발표된 공시가격은 이의신청 기간을 거쳐 4월28일에 확정 고시됐다. 이 시기 임대차 시장에서는 상당한 혼란이 발생했다. 당장 4월28일부터 HUG 반환보증 가입 금액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그림〉을 살펴보자. 이 주택의 2022년 공시가격은 1억6600만원이었지만, 2023년 공시가격은 이보다 800만원 떨어진 1억5800만원이다. 이로 인해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은 기존 2억3240만원에서 2억2120만원으로 낮아진다. 실제로 2023년 2월 2억3000만원에 전세 실거래 계약을 맺은 한 가구는, 이 순간부터 역전세에 직면하게 됐다.
그런데 같은 시기, 국토교통부의 공시가격 발표와 별개로 HUG 역시 ‘두 번째 숫자 보정’에 나섰다. 바로 담보인정비율(C) 하락이다. 2023년 5월1일부터 HUG는 담보인정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추며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을 대폭 낮췄다. 앞서 2023년 4월28일에 조정된 ‘가입 가능 금액’은 다시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림〉에서 2억2120만원이었던 가입 가능 금액도, 곧바로 1억9908만원으로 떨어진다. 이 변화를 임대차 시장에서는 ‘가격이 순식간에 150%에서 126%로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적용비율(B) 140%에 담보인정비율(C) 90%를 곱하면 126%가 되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31일 2억4900만원까지 가입 가능했던 보증보험이, 불과 5개월 만인 2023년 5월1일 1억9908만원으로 5000만원 가까이 낮아진 셈이다.
10만원, 1만원 단위 가격이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가격을 낮춰야만 임차인을 구할 수 있다. 2022년부터 각종 전세사기 사건을 겪으며, 임차인들에게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최소한의 대비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도 사실상 ‘반환보증 가입’을 필수 요건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가장 앞장서 ‘반환보증 예찬’을 펼친 인물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2022년 12월22일 원희룡 당시 장관은 ‘전세보증금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 참석해 “문제는 전세금 반환보증에도 안 들어 있는 분들이다. 모든 것을 국가나 하늘이 도와줄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말을 남겨 피해자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이날 발언이 확산되면서 임차인들 사이에서는 전세사기 방지를 위해서라도 반환보증 가입이 필수처럼 여겨졌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6월 사이 HUG 반환보증에 가입한 건수는 총 16만3222건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2년 1년간 가입한 건수(23만7797건)의 약 70%에 이르는 수치다.
이때부터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이 곧 전세가로 고착화되는 경향이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전세가 하락을 피하고 싶은 임대인 일부가 ‘10만원 단위까지’ HUG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에 맞춰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대개 현금 여유가 없거나 보유한 주택 수가 많은 분들이 10만원 단위 가격을 고집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0만원 단위 전세가가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매물을 찾아보던 한 30대 임차인은 “10만원 단위 매물을 보면 일단 신뢰가 떨어져 피하고 있다. 10만원 단위 절삭도 못할 만큼 사정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시중은행 창구에서도 임대인들에게 ‘가급적 100만원 단위로 물건을 내놓으라’고 조언하는 추세다.
2023년 5월1일에 찾아온 급격한 변화는 이제 안착한 것일까? 실제 중개 거래 현장에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반응이 많다. 2024년 1월1일부터 ‘갱신 가입’에서도 이른바 126%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HUG는 신규 가입 시에만 126%를 적용하고, 갱신 가입의 경우 한시적으로 ‘공시가격X140%’를 인정해왔다. 지난 7개월간, 비아파트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는 ‘갱신할 경우 공시가격의 140% 적용이 가능하니까 일단 이번 위기는 넘기자’라며 전세 연장 거래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신규든 갱신이든, 예외 없이 일괄 126% 기준이 적용된다.
상대적으로 임대인의 입김이 센 동네에서는 HUG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에 맞춘 ‘반전세’ 거래도 늘어나고 있다. 기존 전세보다 보증금 가격을 낮추되, 10만~40만원씩 임차인에게 월세를 요구하는 식이다. 일종의 비용 전가다. 2021년에 지은 서울 강서구 화곡1동 한 빌라(전용면적 29.68㎡)는 현재 보증금 2억3020만원, 월세 2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이 집은 과거 3억900만원에 전세가 거래되었으나, 현재는 HUG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이 2억3058만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받으며 버티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올해가 진짜 문제’라고 강조하는 이들은 곧 2년 만기가 돌아오는 2022년 상반기 전세 거래를 주목한다. 전세가 가장 비쌀 때 입주한 이들이, 더 이상 기존 가격으로 계약을 갱신할 수 없어서다. 다시 〈그림〉의 예시를 살펴보자.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빌라는 2022년 8월에 전세 2억4000만원 계약이 이뤄졌다. 올해 공시가격에 큰 변화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조만간 8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이 가구는 전세가를 4000만원 이상 낮추어야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하다.
2024년 공시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낮다. 이미 정부가 올해 공시가격을 지난해와 비슷하게 맞추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20일 국토교통부는 2024년 표준주택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0.57%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 상승률이 올해 3월에 공개되는 개별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지만, 작년에 비해 주택 공시가격이 크게 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일종의 ‘추세’는 가늠해볼 수 있다.
2024년에도 계속되는 ‘버블 후유증’
비아파트 주택임대차 시장의 이 같은 변화에 임대인과 임차인들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임대인들은 HUG의 126% 규정을 콕 집어 반발한다. 2022년만 해도 공시가격의 150%였던 기준이 1년 만에 너무 급격히 변했다는 것이다. 임대인 단체인 전국임대인연합회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임대인이 내 집을 지켜야 임차인 보호도 가능하다. 전세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려 하지 말라는 게 우리 입장이다. 지금은 사실상 정부가 가격을 정해놓는 구조 아닌가. 대위변제가 늘수록 (HUG가 쥐고 있는) 공실도 늘어난다. 이는 공급 감소로 결국 임차인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구조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차인들, 특히 전세사기·깡통주택 피해자들은 이 같은 주장에 반발하며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2022년부터 각종 전세사기가 발생한 근간에 HUG의 반환보증 가입 기준(공시가격x150%)이 있었다는 것이다. HUG가 과거 매매가보다 높은 금액을 보증해주는 바람에 전세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것이 결국 전세사기가 횡행할 환경을 제공해주었다는 얘기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안상미 공동위원장은 “HUG가 전세사기 붐이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을) 공시가격 대비 126%로 계산해도 이미 깡통전세인 집이 많다. 경매 물건의 낙찰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전세가율(담보인정비율)을 더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그림〉의 예시로 돌아간다면, 2022년 당시 2억4900만원까지 보장해준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며, 이 금액을 이끌어낸 150% 기준 자체가 2022년까지 거품을 키웠다는 의미다.
당장 HUG가 앞장서서 126% 기준을 높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HUG의 재정 문제에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2023년 HUG의 당기순손실은 약 4조9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반환보증 대위변제액이 그만큼 늘어나서다. 그런데 HUG가 맡는 일은 반환보증뿐만이 아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에서도 알려진 것처럼, HUG는 주택사업금융보증, 분양보증 등 부동산 관련 각종 보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태영건설에서 시공하는 22개 사업장 가운데 14곳이 HUG 분양보증에 가입되어 있어서 PF 사태가 확대될 경우 HUG의 재정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비아파트 주택 수요 진작과 임대사업자 편의 확보를 통해 돌파하려는 모습이다. 큰 방향성은 1월4일 ‘2024년 경제정책방향’과 1월10일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 발표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문제가 생길 경우, 임차인이 주택을 매수하기 쉽게 하겠다’는 것이다. 임차인이 거주 중인 소형·저가 주택 매입 시 취득세를 감면해주고, 청약 시 무주택자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정책 목표가 제시되었다. 등록임대사업자가 LH나 지역주택도시공사에 소형·저가 주택을 양도하는 방안도 등장했다. 향후 2년간 준공된 소형주택(60㎡ 이하) 매입 시, 각종 세제 산정 과정에서 다주택 규제를 완화해주는 정책도 내놓았다. 빌라 같은 비아파트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임대인 단체들은 이 정책이 신규 주택에만 해당되어 효과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전세가 폭등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었던 정부 보증 전세대출은 오히려 확대한다고도 발표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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