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아시아 정상에 도전하는 자세 [경기장의 안과 밖]

배진경 2024. 1.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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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은 아시아 맹주 자리를 놓고 24개국이 경쟁하는 축구 대회다. 한국과 일본이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간절함은 한국이 더 강하다.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1월4일 아랍에미리트(UAE)의 뉴욕 대학 아부다비 스타디움에서 훈련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 축구는 자그마치 64년 동안 아시아 정상에 서지 못했다. 아시아 국가 중 월드컵 최다 출전(총 11회, 10회 연속), 월드컵 최고 성적(4강)이라는 역사를 두고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최강을 꼽는 기준은 대륙별 선수권 대회인 아시안컵 성적이다. 한국은 1회(1956년), 2회(1960년) 대회 연속 우승 이후 한 번도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 그마저도 1, 2회 대회는 4개국만 참가해 빛이 바랜다. 대회 규모나 상금 면에서 24개국이 참가하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한국 대신 정상에 선 나라는 일본(네 번),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세 번씩) 등이다. AFC 기준으로 따지면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한 팀은 일본이고, ‘디펜딩 챔피언’은 2019년 대회를 석권한 카타르다. 한국은 결승전에 진출하고도 눈앞에서 우승컵을 놓친 기억이 많다. 참가국 중 최다 횟수 준우승 기록(네 번)이 있다. 가장 최근 결승전에 오른 2015년 대회에서도 ‘잔혹사’를 끊지 못했다. 연장 대혈투 끝에 개최국 오스트레일리아에 패했다. 반면 숙적 일본은 21세기 들어서만 네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면 FIFA 랭킹이 대폭 상승한다. FIFA 랭킹 산정 방식에 대륙별 선수권 대회 성적 가산점이 많이 붙기 때문이다. 월드컵 1년 전에 열리는 컨페더레이션스컵(월드컵 개최국과 각 대륙 챔피언이 참가하는 대회) 출전권도 손에 넣게 된다. 대륙을 대표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2001년 외에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했다.

아시안컵 우승은 어느새 한국 축구의 숙원이 됐다.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으로서는 조금 머쓱한 구호이지만, 한국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많은 선수들의 목표다. ‘무관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더 간절해지고 있다. 만약 기대대로 결승에 오른다면 마지막 경기가 한일전이 될 가능성도 있다. E조의 한국, D조의 일본이 각각 조 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오른다면 두 팀은 결승전에서 격돌하기 전에는 만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축구의 양강으로 꼽힌다. 경쟁국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세대교체나 스타 선수 육성 등에서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한국과 일본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꾸준히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고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도 엇비슷하게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16강에 올랐다. 내로라하는 강호에게도 양국은 밀리지 않았다. 한국은 포르투갈,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을 차례로 꺾으며 아시아 수준을 뛰어넘은 것으로 인정받았다.

2023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 전망 역시 한·일 두 나라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해외 스포츠 베팅 사이트의 배당률을 종합하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일본과 한국이다. 대회 개막을 사흘 앞둔 1월10일 한 스포츠 베팅 사이트의 배당률은 일본 2.94, 한국 4.76이었다. 배당률이 낮을수록 승리 혹은 우승 확률이 높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도 격차는 있지만 그 뒤의 오스트레일리아(7.80),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이상 8.31), 카타르(11.43) 등과는 차이가 더 크다.

다수의 A급 선수 vs 몇몇 특급 선수

최근 대회 성적은 엇비슷하다. 2011년 한국과 일본은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격돌했다. 당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일본이 결승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3위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일본이 8강에서 UAE에 패해 탈락하고, 한국은 결승에서 개최국 오스트레일리아에 연장전 실점으로 패했다. 2019년 상황은 반대였다. 한국이 8강에서 카타르에 덜미를 잡혔고, 일본은 그 카타르를 결승에서 만나 패했다.

한국은 64년의 기다림을 채울 우승을 간절히 원한다. 지난해 2월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1차 평가도 아시안컵 결과를 통해 이뤄진다. 최근 A매치에서 6연승을 거뒀지만, 우승 타이틀이 걸린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우승 시 선수단에 지급할 포상금(개인별 5000만원)을 일찌감치 공표했다. 선수들의 인터뷰에서는 간절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주축 미드필더인 이재성(마인츠)은 출정식에서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이 우리만의 도전이 아니라, 64년간 이어져온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우승컵을 들고 돌아오겠다”라고 말했다.

아시안컵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일본은 아시안컵을 종착지가 아닌 기착지로 여긴다. 지난 월드컵에서 얻은 자신감이 이제 세계를 향하고 있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우리에겐 단기와 중기 목표가 있다. 아시안컵 우승은 늘 기대하고 있다. 장기적 목표는 2026년 월드컵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축구협회도 카타르월드컵 이후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라고 강조해왔다. 아시안컵에 대한 인식 차이는 선수들의 인터뷰에서도 엿보인다. 아시안컵 참가 기대감보다 소속 팀에서의 공백을 우려하는 인상이 짙다. 일본의 차세대 에이스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는 최근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그가 진행되는 중에 아시안컵이 개최되는 것은 유감이다. 내게 월급을 주는 건 소속 팀이지만 대회에 참가할 의무가 있기에 참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비수 도미야스 다케히로(아스널)도 “왜 1월에 아시안컵을 하는지 모르겠다. 선수에게 좋지 않다. 유로(유럽 축구선수권대회)처럼 6월에 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성과에 대한 절실함은 확실히 한국이 강하다. 하지만 팀의 완성도는 다른 문제다. 일본은 아시안컵 개막 직전 치른 최종 평가전에서 요르단을 6-1로 완파하며 A매치 10연승을 달성했다. 한국은 최종 평가전에서 이라크에 1-0으로 승리했다. 내용으로 압도한 경기지만 손흥민·조규성·이강인 등을 후반에 투입한 탓인지 결정력이 빛나지 않았다. 일본은 주전 선수의 공백을 대체할 수 있는 A급 선수가 풍부하다. 반면 한국은 몇몇 ‘특급 선수’들의 활약에 의존도가 높아서 경기력 기복이 있는 모습이었다.

2022년 월드컵 이후 변화를 택한 한국과 연속성을 택한 일본의 차이도 눈에 띈다. 한국은 월드컵 16강을 이끈 파울루 벤투(현 UAE 대표팀 감독)와 이별하고 독일 축구의 레전드인 클린스만을 선임했다. 축구계에서 명성이 높은 인물이지만 지도자로서 성과는 선수 시절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에 부임하기 전까지 커리어도 하향세라는 평가가 많다. 한국 대표팀 감독이 된 후 첫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는 미션을 받았다. 일본의 사령탑인 모리야스 감독은 세계 기준으로 무명이었다. 그러나 2018년부터 대표팀을 맡아 오랜 시간 리더십을 다졌다. 그 결과는 지난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강팀들을 무너뜨린 일본의 조직력으로 나타났다. 과거 오랫동안 외국인 감독을 선호했던 일본이 이제는 자국 출신 감독을 앞세워 원대한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에 도전한다는 꿈이다. 여러모로 대비되는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이번 대회에 흥미를 더하고 있다.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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