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빈곤시대]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주거·노동·건강 등 다차원 빈곤으로 확대
청년층 “부모 도움 없이 빈곤 탈출 어려워”
청년 상·하위 20% 자산 격차 35.2배 달해
“우리는 해방 후 부모보다 못살게 된 첫 번째 세대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상식’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청년층의 빈곤문제는 과거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일자리 부족에 따른 일시적인 소득의 부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 따른 고용 충격의 장기화로 청년층의 빈곤은 사회 문제가 돼버렸다. 청년층 4명 중 1명은 본인을 ‘빈곤층’이라고 여길 정도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청년층의 빈곤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본인의 노력 대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의 규모에 따라 인생의 시작점부터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산의 차이는 청년의 소득·주거·교육·건강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가 되며 청년층의 빈곤 문제는 사회 다방면의 불평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 청년층 42% “나는 빈곤층”
청년층의 빈곤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빈곤은 표준적 기준이었던 단순히 낮은 수준의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청년층 10명 중 4명은 본인이 “빈곤하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년 빈곤에 관한 선행연구 및 정책동향 고찰’에 따르면 만 19~34세의 청년층 42.6%가 본인을 주거와 경제, 노동, 건강 등의 측면에서 빈곤층이라고 응답했다. 또 다른 설문에서도 청년층은 자신들을 빈곤한 세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연구원이 지난해 6~7월 19~34세 청년 40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청년층은 자신을 교육 빈곤층(27.8%), 주거 빈곤층(31.3%)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서울연구원이 서울 청년의 다차원 빈곤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청년 10명 중 9명은 경제·건강·사회적 자본·노동·교육·역량·복지·주거 등의 영역에서 빈곤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통적 빈곤 측정지표인 소득 빈곤율은 11.9%였지만, 자산과 부채를 고려하면 경제 빈곤율은 52.9%까지 치솟았다. 소득은 있지만,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채 빚만 늘어나고 있는 청년층의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청년층의 느끼는 빈곤은 그들의 착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청년가구 중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7.5%에 달했다. 이는 일반 가구의 주거 빈곤비율 4.6%보다 2.9%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청년층의 자산 증식 속도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연령층에 비해 더뎌지고 있다. 전체 가구와 청년가구의 자산 규모 차이는 2012년 1억3454만원이었지만, 2021년에는 2억2207만원으로 격차가 더 커졌다.
◇ 청년층 “부모 도움 없으면 계층 이동 어려워”
청년층은 소득이 한정된 상황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 없으면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년들은 본격적으로 사회로 나가기 전 교육을 받는 단계에서부터 빈곤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으로 나뉘고 있다. 부모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경제적 지원의 격차에 따라 교육 빈곤층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8~29세 청년들의 부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학자금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들은 10분위 중 3분위 이하의 저소득층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약 2조8802억원이었다. 이 중에서도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에 속한 청년층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1조2406억원이었다.
청년층의 자산 규모 또한 부모의 지원에 따라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20~30대가 가구주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5651만원으로 집계됐다. 자산 하위 20%(1분위)는 2784만원에 그친 반면 상위 20%(5분위)는 9억8185만원에 달했다. 상위 20%를 하위 20%로 나눈 값인 ‘5분위 배율’은 35.2배나 됐다. 소득만 보면 청년층의 차이는 크지 않다. 상위 20%의 소득은 1억592만원으로 하위 20%의 3087만원에 비해 3배가량 많은 정도다. 그러나 이처럼 자산격차가 두드러진다는 것은 부모의 재력에 따라 사회생활의 출발선이 달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자산이 있는 청년층은 투자를 통해 자산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부동산 보유 여부에 따라 청년이 가구주인 가구의 자산 규모는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2012년 기준 부동산을 가진 가구의 자산 규모는 부동산을 갖지 않은 가구의 3.46배였다. 하지만 이 격차는 꾸준히 증가해 2021년에는 3.97배까지 벌어졌다. 자산 규모 증가폭도 부동산이 있는 청년가구주 가구가 더 컸다. 부동산이 있는 청년층의 자산은 2012년 3억5983만원에서 2021년 5억6846만원으로 58%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부동산이 없는 청년층은 1억1878만원에서 1억4325만원으로 2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청년층의 주거 빈곤 역시 부모의 지원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청년들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택 구입비나 전월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은 경우가 56.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곽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년가구주 가구의 자산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그 증가세는 가구유형과 소득계층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 청년들 사이에 자산 편차가 커지는 양상이 뚜렷하다”라며 “이러한 현상이 자산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청년빈곤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학자금 대출에 빚투, 결국 불법사채로… ‘빚 수렁’ 벼랑끝 2030
② 출발점 달랐던 두 청년, 10년 후 모습은… 빈곤 대물림 겪는 2030
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⑥ 20대 금융이해력 49점… 범죄·사기 노출된 금융문맹 청년층
⑦ “한국 청년은 왜 가난한가요?”… 촘촘한 청년 지원책 갖춘 독일·싱가포르
⑧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 끝나… 복잡한 청년 문제 맞춤형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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