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못하는 게 뭐니?[편집실에서]

2024. 1. 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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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편집장



2008년 가을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편의점의 지하철 공습’이라는 제목으로 지상에서만 보던 편의점이 이런저런 이유로 땅속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는 그게 뉴스였지만, 지금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놀랄 일도 없는 구문이 돼버렸지요. 지하철 역사 곳곳에서 만나는 편의점은 이젠 아주 보편적인 풍경입니다.

이후로도 편의점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한국은 좁다며, ‘K푸드’ 바람을 타고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필두로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 편의점 간판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검은 종이를 어떻게 먹느냐’며 기겁해 달아나던 김이 김밥 등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수출 최대치를 기록한 데서도 드러나듯, 한국 음식을 맛보려는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지요.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친절한 서비스, 내국인을 봉으로 아는 갑질 행태, 잊을 만하면 터지는 오너 리스크·담합·탈세 비리 의혹 등을 보며 욕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막상 이역만리 타국에서 펄럭이는 국내기업 깃발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진다는 ‘간증’을 늘어놓는 이가 적지 않은데요.

편의점의 변화와 발전은 이 순간 국내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CU 홍대상상점은 라면 특화 편의점입니다. 각종 브랜드의 봉지라면부터 컵라면에 이르기까지 ‘라면천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진열된 라면을 보며 소비자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경험을 합니다. 매장 한켠에선 즉석조리 기계를 사용해 직접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고요. K콘텐츠에 등장하는 라면 먹는 모습 등이 인기를 끌면서 이를 체험해보려는 외국 관광객이 많다고 합니다. 포화상태에 다다른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역시 창의력과 아이디어, 즉 스토리의 힘이라는 사실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편의점은 어느덧 편의시설 단계를 넘어 물과 공기처럼 일상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은 누군가에겐 ‘심야 포장마차’요 ‘비상약국’입니다. 또 누군가에겐 ‘야간 은행’이자 ‘동네 우체국’이 됐습니다. 밤길을 걷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일단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고 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방범초소’ 역할까지 떠맡았군요. 고물가 시대를 지나면서 헐거워진 주머니 사정은 ‘편의점 도시락’ 구입 열풍을 일으켰고, 이에 발맞춘 다양한 메뉴와 이색 아이디어 상품은 혼밥 선호, 집밥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1인 가구 시대 최적화된 ‘미니마트’로 위상을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소소한 품목만 취급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장기 렌터카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점포도 등장했다고 하니, 편의점의 무한변신이 앞으로 어디까지 뻗어갈지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밀려오는 원초적 두려움 같은….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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