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춥지만 따뜻했던, 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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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드리워진 조용한 밤, 길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젊은이는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이별의 아픈 마음을 안고 길을 떠나려 합니다.
눈보라를 헤치고 여행을 하던 나그네가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달콤한 꿈을 꾸게 됩니다.
마음속 근심과 걱정은 하얀 눈으로 덮어버리고 희망의 길을 따라 흔들림 없이 걸어가려면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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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드리워진 조용한 밤, 길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젊은이는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이별의 아픈 마음을 안고 길을 떠나려 합니다. 길 잃은 개가 짖는 소리는 텅 빈 그의 마음에 허무하게 울리고, 향기롭게 핀 5월의 꽃처럼 만발했던 사랑이 이제는 슬픔이 돼 온 세상에 가득 차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 문 앞에 작별의 인사를 적어놓고 젊은이는 쓸쓸히 여행을 떠납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빌헬름 뮐러의 시에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겨울 나그네’의 제1번 곡 가사입니다. 원래는 ‘겨울 여행’인데 일본어로 된 제목을 번역하다가 생긴 실수로 우리에겐 ‘겨울 나그네’로 알려졌습니다. 누구의 실수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은 일부러 붙이려 해도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추운 겨울의 이미지와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만났으니 시와 음악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음악 여행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27년에 작곡됐습니다. 가난과 질병으로 결혼도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모든 곡에 깊은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슈베르트 사후에 악보가 출판됐기에 그는 자신의 작품이 연주되는 것을 듣지도 못하고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울 나그네’는 24개의 연가곡으로 돼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제5번 ‘보리수(Der Lindenbaum)’입니다. 성문 앞 우물가에는 보리수가 있었는데 나그네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안함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고, 나무줄기에는 사랑의 말도 새겨놓았지요. 사랑은 떠나갔지만 살랑거리는 나뭇잎의 흔들림은 늘 이곳으로 와서 안식을 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했던 슈베르트는 피아노를 살 돈이 없어서 기타로 작곡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아노로 연주하는 전주 부분에서도 기타의 줄을 뜯고 있는 슈베르트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제6번 곡인 ‘홍수(Wasserflut)’는 눈물의 홍수 즉, 눈물이 넘쳐흐른다는 뜻입니다. 홍수처럼 넘쳐흐르는 눈물이 하얀 눈 위로 떨어지고 눈 속에 얼어붙습니다. 봄이 되면 이 눈물이 녹아 냇가에 흐르게 되고 마을 어귀를 돌고 돌아 문득 눈물이 끓어오르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그녀의 집일 것이라 말합니다. 24곡 모두 아름답지만 저는 제11번 ‘봄 꿈(Frühlingstraum)’을 가장 좋아합니다. 눈보라를 헤치고 여행을 하던 나그네가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달콤한 꿈을 꾸게 됩니다. “나는 활짝 핀 봄의 꿈을 꾸었네. 5월에 피는 꽃을…. 나는 푸른 들의 꿈을 꾸었네. 즐겁게 새가 노래하는….” 빛나던 사랑의 추억이 찰나로 기억되고 나그네는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음악이 너무 아름답고 달콤해서 더 슬프고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새로운 한해가 밝았습니다. 마음속 근심과 걱정은 하얀 눈으로 덮어버리고 희망의 길을 따라 흔들림 없이 걸어가려면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봐야겠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 그리고 내 영혼의 포근한 목도리와 무릎담요가 돼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꼭 챙겨야겠지요?
이기연 이기연오페라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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