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는 생각보다 서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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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현재 한국 정치가 양극화돼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과거에 비해 더 양극화됐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주위를 잘 살펴보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한미일 동맹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페미니즘에 동조하지만 이슬람권 국가로부터 난민을 받는 것은 거부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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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현재 한국 정치가 양극화돼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과거에 비해 더 양극화됐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예전에도 지금만큼 양극화가 심했는데 1인 미디어와 정파성을 띤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 유독 양극화를 언급하는 정보가 넘치고 있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치 영역에서의 갈등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양극화 현상이 과거에 비해 지금 과장됐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 차원에서 진영을 나누고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정치 현상을 단순하게 재단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실체가 모호한 양극화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치 이념 지형을 진보-보수의 이분법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사고 실험을 해보자. 우리나라에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정치 현안이 100개 있다고 치자. 그 100개의 현안 각각은 찬성-반대 여부에 따라 진보적 입장과 보수적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자. 그리고 진보적 입장에는 0점을, 보수적 입장에는 1점은 준다고 치자.
이 경우 100개의 현안에 모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 총점이 0점인 유권자 혹은 100개의 현안에 모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총점이 100점인 유권자의 수는 매우 미미할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100개의 현안 중에서 일부 현안에는 진보적인 입장, 다른 현안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만들어 보면 진보-보수의 이분법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스펙트럼에서 진보-보수를 나누려면 50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총점이 50점보다 작으면 진보, 50점보다 크면 보수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유권자의 총점이 49점이고 또 다른 유권자의 총점이 51점이라면, 이 두 유권자 간의 이념 격차는 거의 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자의적인 진보-보수의 이분법에 따르면 49점을 갖는 유권자는 진보, 51점을 갖는 유권자는 보수로 구분되고 만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이미 진영 혹은 편을 정한 후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정한다는 사실이 비극의 출발점이다. 홀로 선 개인의 자격으로 중요한 정치 현안을 꼼꼼히 살펴본 후 입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눈으로 정치 현안을 읽고 이해한 후 그것을 애써 진보-보수의 이분법에 끼워 맞추고자 하는 것이 비극의 출발점이다.
우리 주위에는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면서도 동성 간 결혼을 지지하고 동시에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덜 걷기를 바라며 친일파 청산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주위를 잘 살펴보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한미일 동맹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페미니즘에 동조하지만 이슬람권 국가로부터 난민을 받는 것은 거부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이들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 혹은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 즉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진보 혹은 보수 진영의 일원이 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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