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에 중기 줄폐업? 안전·노동법 전문가 “부담 있겠지만 과장 말아야“
산업계 “안전관리 비용 부담, 사업주 쉽게 처벌” 우려
전문가 “과도한 걱정 불필요, 합리적 수준 개선 요구”
법조계 “처벌 우려 과장 불필요, 사법부도 신중 판단”
중기 83만 개인데 사망사고 388명 “경제 타격은 기우“
“근로자 수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적용되면 오너 범법자가 양산되고 폐업ㆍ도산이 줄 이을 것이다.”
오는 27일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을 두고 경영계가 제기하는 우려다. 중대재해법은 일터에서 노동자 사망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법이다. 2021년 1월 제정돼 1년이 지나 대기업부터 적용됐고 중소기업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2년 더 유예기간을 주고 올해 시행을 앞뒀다. 경영계는 '시간을 더 달라'며 2년 추가 유예를 호소한다.
23일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산업안전ㆍ노동 법률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으로 중소기업이 심리적ㆍ재정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법을 유예할 정도는 아니다” “경영계가 말하는 공포는 과장됐다”는 게 중론이다. 중대재해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산재 사망국가’에서 벗어나자는 사회적 합의의 소산인 만큼 “예정대로 시행하면서 정부 지원을 함께 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제언이다.
안전관리체계 막대한 투자 필요? 합리적 노력이면 허용
기업들이 호소하는 부담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①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안전관리체계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비ㆍ시설 개선에 수억 원이 들어간다는 주장도 한다. ②사고가 발생하는 족족 중소기업 대표가 처벌받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기업들이 줄줄이 폐업해 나라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기업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중대재해법이 중소기업이 감당 못 할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실제 이 법은 안전관리체계 구축 요건으로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ㆍ위험요인 확인 후 개선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게 업무 수행에 필요한 권한과 예산 부여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인력ㆍ시설ㆍ장비 구비 등 9가지 사항만 ‘포괄적’으로 정해 놨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출신인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어디까지, 얼마나 투자하라고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며 “합리적 수준에서 진행하면 다소 미흡해도 안전관리체계 구축 노력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 같은 규정으로 중대재해법은 ‘모호하고 주관적이다’는 비판도 받지만, '기업에 따라 개선 내용이 다른 상황'을 감안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중소기업은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실상과 부합하는지도 논란거리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11월 50인 미만 기업 1,053개 기업을 조사했더니 94%가 ‘법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점을 내세워 '추가 유예'를 주장한다. 반면 지난해 3월 고용부가 '중립적 기관'인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인 미만 사업장 1,442곳을 조사한 결과 81%가 ‘안전보건 의무를 갖췄거나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다만 고용부는 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중처법으로 줄줄이 감옥행? 이미 산안법 시행 중
법조계 출신 전문가들은 ‘줄폐업 가능성’도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중소기업이 중대재해법이 아니더라도 그 모태 격인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이미 적용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산안법상으로도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게 돼 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중대재해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권창영 지평 변호사는 “산안법을 통해 중대재해법과 유사한 안전의무 조치와 처벌 조항이 오래전부터 시행돼 왔다”며 “추가적인 안전체계 구축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사법부도 사업주 처벌에 신중한 태도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600여 곳이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31곳이 기소돼 1곳만 실형(한국제강)이 선고됐다. 대검찰청 산업안전 분야 전문검사 출신인 최창민 인화 변호사는 “검찰은 사망 사고가 일어났을 때 기업 대표와의 연관성을 신중하게 판단해 왔다”며 “산안법 때도 입건조차 안 하거나 기소유예가 많았고, 중처법도 실형은 한 건이며 대부분은 집행유예”라고 했다.
적용 범위도 제한적… ‘시행과 지원 병행’ 바람직
적용 범위도 제한적이다. 고용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대재해 사고 사망자는 644명으로, 이 가운데 388명(60%)이 중소기업에서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위원을 거친 김관우 율촌 수석전문위원은 “중소기업이 83만 개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중처법 대상이 388개라는 것은 적은 비율”이라며 “중처법 시행으로 경제가 위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역으로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산업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면 안타까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처법 유예’ 대신 ‘중처법 즉각 시행과 정부 지원 병행’에 힘을 실었다. 권창영 변호사는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은 기업의 경영권보다 우선하는 권리”라며 “기업이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예산과 인력을 우선 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법 전문가인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기업들은 안전에 투자하지 않았다”며 “유예한다고 해도 안전 투자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법을 시행하며 정부가 과감한 시설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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