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나이가 들수록 더 젊어지는 법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2024. 1.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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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나름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뭔가 약간 다른 느낌이더니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해 아예 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 보니 거의 다 그랬다. 사고의 폭이 점점 좁아져 제 말만 앞세우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놈 저놈 돌려가며 나쁜 놈이라고 험담한다. 어디 조금이라도 자신과 다른 견해를 내보이면 버럭 화부터 낸다. 대개 나이 예순쯤 넘어서면 이런 증세가 발현해서 갈수록 심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직은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인데 임금 피크제니 명예퇴직이니 별의별 신통한 기법에 내쳐지듯 밀려나는 기분이 불쾌하면서도 불안해 매사 거치적거리고 짜증만 유발한다. 딱히 찍어 이르기 뭣한 부당함을 내쳐 말하지만 다들 건성으로 무시하는 것 같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나 싶어 재차 강조해서 말하면 이젠 아예 대놓고 듣기 싫어하는 눈치다. 어쩐지 투명 인간처럼 홀로 내팽개쳐진 느낌이다.

그럭저럭 오래 살았다. 혹 나도 그리될까, 추하게 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래전부터 마음을 갈무리하고 경계해 왔다. 평생을 거의 비정규직으로 살았지만 이젠 아예 마음부터 내려놓고, 그동안 맡고 있던 역할과 자리도 서둘러 물렸다. 이렇게 얻은 마음의 평화가 나를 더 충만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욕망을 구하려 들면 결국 더 외로워지기 마련이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사람이 생각 이상으로 어리석다는 사실이다. 내 확신이 당연히 옳다고 굳세게들 믿고 있지만 섭섭하게도 그른 경우가 더 많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내 믿음 가운데 많은 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둬야 한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천차만별이다. 과거에 인정했던 당대의 과학적 진리도 바뀌어 왔다.

더 많이 배우고 익혀 깨달을수록 서로 가까워져야 할 텐데 현실은 더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는 자신의 확신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사고가 굳어버릴 대로 굳어 여유가 없으니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젊은이들은 대화할 때 상대의 말에 “맞나?” “어, 그렇나?” 추임새처럼 달아준다. 내 확신에 대한 고집이 없다. ‘그렇나? 너는 그리 생각하나?’ 같이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고 낯선 이나 생각이 다른 이에게도 선의로 대하는 건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품위다. 사람을 차별하고 편견을 굳혀가는 건 나잇값을 못 하고 잘못 늙어가는 사람의 전형이다.

내가 그르다고 생각한 사람들끼리 서로 자랑질하고 추어주고 하는 걸 보면 내가 오히려 비정상인가 의심될 때가 많다. 나는 온당하고 저 사람들은 글렀는가? 다들 자신은 정상으로 단정한다. 정신이상을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멀쩡하다고 믿는 나 역시 사실은 정신이상과 정상의 경계에서 고무줄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선으로 나눠 가를 수 없다.

오래전 일이다. 시험감독 중 한 학생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다. 꼭 움켜쥔 왼 손바닥을 자꾸만 들여다보고는 몇 자 적고 또 들여다보고 하는 게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한참 지켜본 뒤 살며시 다가가 학생의 손을 펴봤더니 땀에 젖은 조그만 지우개가 들어있었다. 멋쩍어서 학생의 허리를 펴주며 서둘러 수습하고 돌아섰지만 내심 너무 미안했다.

그때 그 여린 학생을 붙잡고 “내가 너를 의심했다 미안하다”고 사죄했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내 잘못을 인정하는 일에 서툴렀다. 아니 사실은 어쨌건 변명으로 둘러대려 하지 결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내가 딱딱해지고 늙었다는 증거다. 내가 타인의 입장까지 더듬어 생각할 때 삶은 윤택해진다.


세상은 젊은 피부를 탐하고 동안에 집착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번지르르한 껍데기가 아니다. 늙으면 근육 밀도가 떨어져 넘어지고 다칠 위험이 커진다. 근육 밀도를 높이고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면 뱃살도 줄어든다고 근력운동을 권한다. 육체적 근력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정신적 근력을 더 챙겨야 한다. 내 확신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정신이 나를 진정 젊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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