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갈등, 선거 동력으로… 모디 3연임 노린 ‘힌두교 정치’

김지원 기자 2024. 1. 24.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힌두교 사원 축성식에 참가… 총선 100일 앞두고 ‘승부수’
22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아요디아에 세워진 라마신 사원에서 축성식이 열린 후 힌두교도들이 종교적 구호를 외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인도 북부 도시 아요디아에서 22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형 힌두교 사원 축성식을 계기로 남아시아의 오랜 앙숙이자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간 갈등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2년 전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파괴된 자리에 건립된 이 사원의 축성식이 총선을 100여 일 앞둔 모디의 정치적 승부수로 인식되는 가운데,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이 즉각 규탄 성명을 내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47년 힌두·이슬람 종교 갈등으로 따로 독립한 두 나라는 그동안 종교·영토·군사 등 각 분야에서 충돌했고 여러 차례 유혈 분쟁도 겪었다.

이날 아요디아에서 힌두교 사원 축성식에 참석한 모디는 축사에서 “수 세기에 걸친 인내와 희생 끝에 우리의 라마신이 오셨다”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어 화려하게 치장된 사원 안에서 자신이 경건한 표정으로 참배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여러 장과 동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아요디아에 정말 특별한 날”이라고 썼다. 평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동정을 즉각적으로 알리고, 주요 국정 메시지를 전파해온 모디가 신실한 힌두교도의 면모를 국내외에 드러낸 것이다.

꽃잎 봉헌하는 모디 -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흰 재킷) 인도 총리가 22일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 힌두교 사원 축성식에서 힌두교 신 '람 랄라' 신상에 꽃잎을 봉헌하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이 사원이 세워진 곳을 힌두교인들이 섬기는 라마신의 탄생지로 믿어왔다. 1992년 힌두교 신도와 이슬람 신도 간 분쟁으로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어 종교 갈등의 진원으로도 불려온 이곳에 모디가 힌두교 사원을 세우자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는 다분히 ‘힌두교 표심’을 겨냥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디는 5월을 전후해 3주 동안 열리는 총선을 통해 3연임에 도전한다. 그의 집권기 인도의 경제와 대외 영향력이 크게 성장했고, 현재 유력한 정치적 라이벌도 없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그가 이끄는 집권 인도국민당(BJP)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가 3선에 성공할 경우 인도 초대 총리이면서 국부로 추앙받는 자와할랄 네루(16년)에 이어 역대 둘째 장수 총리에 오를 수도 있게 된다. 더 확실하게 장기 집권 기반을 닦기 위해 그가 힌두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모디의 행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모디가 민족주의 색채를 짙게 드러내면서 인도가 구축해온 서구식 의회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모디 정부가 2019년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박해받는 힌두교나 불교, 기독교 등 신자들에게 인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시민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박해받는 종교’에서 이슬람교가 쏙 빠진 것으로 나타나자 “노골적 힌두 민족주의가 본색을 드러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모디는 힌두교도들을 강력한 단일 민족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과제를 밀어붙여 왔고, 힌두교는 국교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모디가 힌두교 사원에 간 당일 파키스탄 외무부는 장문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한 자리에 힌두 사원을 지은 것은 인도가 다수(힌두교도)를 위한 사회가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는 인도 무슬림들을 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소외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했다. 이어 “파괴된 모스크 부지에 세워진 사원은 앞으로 인도 민주주의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도 했다. 힌두교도들이 모스크를 파괴한 과거사를 거듭 거론하며 힌두 사원 건립이 반(反)이슬람적 행위임을 부각한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이번 힌두 사원이 건립된 터는 인도 내 해묵은 힌두·이슬람 갈등을 상징하는 장소다. 힌두교도들은 이곳을 자신들이 추앙하는 ‘라마신’의 탄생지로 믿어왔는데, 이슬람계 왕조인 무굴 제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16세기 중엽에 이곳에 ‘바브리 모스크’가 건립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1992년 이 지역에서 2000여 명이 숨지는 최악의 힌두교도·무슬림 유혈 충돌이 일어났을 때 극렬 힌두교도들이 모스크를 파괴했다. 2019년 모디의 주도로 라마신을 모신 힌두 사원 건립이 시작됐는데, 이는 모디 정권의 ‘힌두 민족주의’ 색채가 집약된 이벤트라는 평가가 나온다.

힌두 민족주의의 대두는 종종 파키스탄과의 유혈 충돌로 이어졌다. 인도 내 무슬림 인구는 2억1000만명으로 세계 인구 7위 브라질에 맞먹지만, 세계 1위 인구 대국(14억2000만명) 인도에서는 소수 집단이다. 이런 인도의 무슬림들을 파키스탄은 ‘탄압받는 무슬림 동포들’로 여겨 이들을 후원하고 인도를 비난해왔고, 인도는 파키스탄을 “테러리스트 지원 세력”으로 적대시해왔다. 이런 구도 속에 두 나라는 1947년 독립 이래 영유권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수차례 유혈 충돌을 반복해왔다. 다만 두 나라가 2021년 2월 국경 지대에서의 정전(停戰)에 합의하면서 고조되던 군사적 긴장은 일단 해소됐다. 그러나 모디의 힌두 사원 축성식에 파키스탄이 강력 반발하면서 두 나라 간 정전 모드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각각 160개 안팎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두 나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은 국제 사회의 오랜 걱정거리다.

☞힌두 민족주의

인도의 국가·민족 정체성의 근원을 힌두교 신앙에서 찾는 이념을 말한다. 16세기 인도를 통치했던 이슬람계 무굴 왕조와 영국의 식민 통치기를 겪으며 형성됐고, 힌두 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1925년 창립한 ‘국민의용단(RSS)’의 활동을 통해 정립됐다. 이슬람 등 외래 종교와 문화에 맞서 힌두교에 기반한 인도 고유의 사상과 생활양식을 수호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도 사회를 통합시킬 것을 주장한다. 모디는 소년 시절에 RSS에 가입했고, 1987년 인도국민당(BJP)에 입당하며 본격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