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미국엔 없는 ‘차돌박이’
음식 전문 번역가로 일하면서 생긴 꿈이 있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각국의 정육업자를 한자리에 모아서 소와 돼지의 모든 부위 명칭을 비교하고 싶다는 것이다. 조리법을 번역할 때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요리에 사용한 고기 부위 명칭’이기 때문이다. 같은 고기 부위를 부르는 이름이 한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탓도 있지만, 소와 돼지 등 동물을 도축하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대치할 수 있는 부위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유대인의 전통 요리인 ‘브리스킷’은 같은 이름의 부위를 사용해서 만든다. 주로 양지나 차돌 양지로 번역하는데, 실제로 판매하는 브리스킷은 양지머리와 차돌박이, 앞다리 살이 모두 붙어 있거나 양지머리에 차돌박이가 반 정도 붙어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앞다리 살이 붙은 브리스킷을 ‘차돌 양지’로만 통칭할 수 있을까? 게다가 영어사전에서 ‘차돌박이’를 검색하면 브리스킷으로 나오지만 차돌박이는 브리스킷의 일부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차돌박이만 따로 성형해서 팔지 않으니, 차돌박이에 해당하는 정확한 영문 명칭이 없는 것이다! 이러면 번역가가 달고 싶은 역주는 길어져만 간다.
언어는 생활상을 반영하고, 그 언어는 다시 정신을 지배한다. 고기 부위의 형태와 종류는 그 나라 식문화가 발달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고, 다양한 이름만큼 조리법도 다양하며, 새로운 이름을 붙이면 새롭게 유행한다. 차돌박이를 브리스킷으로 뭉뚱그리는 미국에서는 얇게 저며서 구우면 고소한 맛을 모르지만, 십 수 시간 조리해서 살살 녹는 찜을 만든다. 소외당하던 저렴한 소갈비 부위는 횡으로 썰어서 LA 갈비라는 이름을 붙이자 영원한 인기 메뉴가 되었다. 2013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새롭게 스테이크로 쓸 수 있는 소고기 부위를 ‘발견해서’ 베이거스 스트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홍보하며 고객이 늘어날 것을 기대했다.
지금도 고기의 부위별 명칭은 나라마다 갈라지며 늘어나고 있다. 상업적 목적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결국 더욱 맛있고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번역가로서 간절하게 바란다. 어떤 낯선 부위가 나타나더라도, 새로운 맛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정확한 명칭을 이모저모 찾아 소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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