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애플·테슬라 등 빅테크는 왜 CES 2024에 소극적이었을까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2024. 1.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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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 시각) CES가 열린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의 다쏘시스템 부스에서 관람객이 디지털 트윈 기술로 구현한 가상의 뇌를 살펴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유지한 기자

디지털 신대륙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행사가 바로 CES다. 매년 1월이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쇼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개최된다. 코로나로 한때 어려움을 겪었던 CES는 작년부터 성황을 이루더니 올해는 역대 최고의 성공을 거뒀다. 우리나라는 산업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서울시, KOTRA 등이 통합한국관을 차렸고 지자체, 대학 등도 별도 부스를 만들어 해외 진출을 꿈꾸는 기업들을 지원하면서 무려 772개 기업이 전시에 참여했다. CES의 메인 전시는 역시 대기업들인데 올해에도 삼성전자, LG전자, SK, 현대자동차 등 우리 대표 기업들이 가장 화려하고 멋진 전시를 보여줘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선보인 투명 디스플레이와 AI가 적용된 가전제품들은 압도적 기술력을 보여주며 전시 기간 내내 큰 주목을 받았다. 최고 기술력을 보여주는 ‘CES 혁신상’도 우리 기업들이 143개(전체의 40%)나 받으면서 기술적 우수성도 증명했다.

그래픽=김하경

CES 2024의 슬로건은 ‘올 투게더, 올 온(All Together, All On)’이다. 모든 기술의 통합을 통해 인간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이고 산업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진보된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을 거의 모든 분야에 융합 적용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전시를 관통한 하나의 메시지는 역시 AI다. 거의 모든 산업에 AI가 적용 중이다. 등장 1년 만에 세계 시장을 뒤흔든 챗GPT의 강력한 파괴력이 역시 CES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었다. 거의 모든 기업은 AI 설루션을 들고 나왔다.

우리나라 기업 중 유일하게 기조연설을 맡은 HD현대 정기선 부회장은 AI와 자율 주행으로 운행하는 굴착기, 트럭, 불도저 등 스스로 협업하는 건설 기계의 미래를 선보였다. 전통적인 중공업회사가 디지털 트윈, AI, 자율 주행을 모두 묶어 메타 인더스트리로 진화하는 미래를 선보인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아예 ‘소트프웨어 정의 자동차(SDV, Software-Defined Vehicle)’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앞으로는 하나의 소프트웨어 체계로 모든 자동차를 통합 관리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1위 화장품 회사 로레알도 기조연설을 통해 AI 진단으로 최고의 화장 방법을 가르쳐주고 심지어 눈썹도 그려주는 서비스를 선보였고 헤어 상태를 진단해 최적의 염색, 헤어드라이까지 제공하는 신제품을 등장시켰다.

가장 주목받은 분야 중 하나가 디지털 헬스케어였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엘레반스 헬스(Elevance Health)사는 이미 1억1700만명에 달하는 환자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적용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감소하고 당뇨병 환자 상태가 개선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이제 헬스케어 분야에서 AI 활용은 필연적 선택이 되었다. 이렇게 되다 보니 그동안 디지털 문명에서 발전했던 메타버스, 센서, 반도체 등 거의 모든 기술이 AI를 중심으로 기존 전통 산업에 모두 융합(All On)되는 상황이다. AI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이번 CES가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래픽=김하경

CES를 통해 바라본 디지털 신대륙의 미래는 AI를 기반으로 하는 또 한번의 진화다. 아이러니한 것은 AI 혁명을 주도하는 빅테크들의 참여는 미미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기업인 애플과 가장 혁신적 기업 테슬라가 불참했고 AI 주도 기업들인 MS, 구글, 아마존, 메타도 제품보다는 플랫폼 기업들이라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부스를 운영했다. 그나마 엔비디아가 적극 참여했지만 내세운 건 기업 지원을 위한 생성형 AI 설루션이 핵심이었다. CES가 제품 전시회인 만큼 제조업이 강한 한국과 중국이 가장 활발한 참여를 보인 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가면 결국 제조 기업들은 빅테크 기업들에 종속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 AI 주도 기업들이 가진 엄청난 자본력을 감안하면 생성형 AI 시장을 이들이 지배할 가능성이 높고 이 서비스를 활용하는 기업들은 독립적 서비스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빅테크들이 세계 최고 전시회에 참여해 과시적 부스 운영에 돈을 쓰는 대신 많은 스타트업을 방문해 투자나 M&A 등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우월적 지위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AI 시대 생존 전략을 과거와는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인재 양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마음은 더 급해진다. 이제 AI는 응용이든 개발이든 거의 모든 산업에 필수재가 되고 있다. 당연히 교육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신산업에 대한 이해와 AI 활용 능력도 키워줘야 한다. 반도체, 자동차, 중공업, 건설, 헬스케어, 유통, 금융, 서비스 등 우리나라 일자리를 담당하는 주요 산업군 중에서 앞으로 AI를 활용하지 않는 산업은 없다. 그 신세계를 이끌어갈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거의 모든 산업군에서 디지털 인재와 AI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과연 우리의 인재 양성 시스템은 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디지털 문명이나 AI를 바라보는 관점은 오로지 부정적인 편견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CES 전시를 다니며 디지털을 막아서는 규제로만 사회를 지키려는 우리 현실이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우리는 진정한 실력이 모든 걸 결정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바뀌는 산업 생태계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CES 전시에 우리 기업들의 참여가 증가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더 중요한 건 미래에 필요한 진정한 실력과 인재를 사회 전체가 함께 키우는 일이다. ‘본격적인 디지털 문명 시대, AI가 미래다, 모두 함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CES 2024가 이렇게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 오직 제조업 중심의 우리 사회 세계관이 디지털 신문명으로 서둘러 이동해야 할 때다. AI 혁명의 시대다. 새해는 각오를 단단히 하자. 시작은 내 마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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