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한 번에 875만원, 年 100회 골프… ‘황제 사외이사’

류정 기자 2024. 1.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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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사외이사의 세계

‘시급 28만9000원의 최대 꿀보직.’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2022년 4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에서 활동한 사외 이사들의 활동과 보수를 분석한 결과다. 금융지주 사외 이사 29명은 월 기본급으로 400만~500만원을 받았고, 이사회 내 위원회 활동을 하면 월 50만원 수당을 추가로, 회의 한 번 참석할 때마다 ‘거마비’로 100만원을 또 받았다. 평균 연봉은 약 7000만~8000만원으로 이사회 의장 등을 맡으면 1억원에 달했다. 이 밖에 연 1회 종합건강검진, 회의 참석 시 의전 차량이 지원됐다. 하지만 이들이 이사회에 참석하고 서류 검토 등에 들인 ‘활동 시간’은 300~400시간. 일반 직장인이 1년간 2000시간 이상 일해서 버는 돈을, 15~20% 수준의 시간을 들여 벌어들인 셈이다.

그래픽=이철원

사외 이사는 대주주와 사내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라고 만든 제도다. 하지만 사외 이사들이 기업들로부터 고액 연봉, 골프회원권, 해외 출장 등 과도한 혜택을 받으며 ‘허수아비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학계에선 ‘사외 이사 되는 법’ 같은 강좌가 개설되는 등,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은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 일부 ‘주인 없는 회사’(소유분산기업)에선 사외 이사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며 ‘특권 조직’으로 변질되는 모습도 보인다.

◇회의 한 번에 875만원… 비즈니스 좌석으로 해외 출장

최근 ‘캐나다 호화 이사회’로 문제가 된 포스코홀딩스 사외 이사는 재계에서 ‘사외 이사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7명으로 구성된 사외 이사들이 그대로 ‘CEO 후보추천위’ 위원이 돼, 포스코 회장(CEO)을 선임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포스코홀딩스 사외 이사들이 받은 평균 보수는 연 1억500만원이다. 연간 이사회는 총 12번 열렸으니, 회의 한 번에 875만원을 받은 셈이다. 이 같은 지배 구조는 포스코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로 2003~2007년 설계됐지만, 사외 이사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사업장 시찰이나 견학을 명분으로 한 해외 출장도 사외 이사들이 갖는 특혜로 꼽힌다. S그룹은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 주요 계열사 사외 이사들을 데리고 갔다. 비즈니스 좌석을 포함해 1인당 2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지원됐다. 대기업 L사는 1년에 1회 정도 사외 이사들과 해외 공장 견학 등 시찰을 나간다. 재계 관계자는 “최신 기술 트렌드를 공부하고 회사 경영 이해를 넓히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등기이사 수준의 의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지 법인장 등이 총출동하는 등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보유한 골프회원권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사외 이사들이 누리는 특권 중 하나다.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평일에 경기도 주요 골프장에 가보면 사외 이사들의 체육대회 같다”며 “어떤 사외 이사는 기업이 제공한 회원권으로 1년에 골프만 100번 가까이 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사외 이사도 등기 이사이기 때문에 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하는 것이지 특혜는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사외 이사가 회사가 제공하는 과도한 지원을 받을 경우, 감시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이철원

◇1년에 골프 100회… 임기는 최대 6년

사외 이사의 대부분을 교수들이 맡는 것은 인재 풀이 적은 데다, 기업과 이해 상충 관계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사외 이사가 부업으로 연봉 1억원 안팎을 받을 수 있는 ‘꿀보직’으로 통하고, ‘사외 이사 되는 법’을 서로 공유하며 추천을 요청하기도 한다. 국내 한 유수 대학 교수는 “사외 이사 보수나 형태도 천차만별이라 어떤 기업 사외 이사가 더 좋은지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며 “일부 교수들은 해당 기업에 잘 보이기 위해 해당 기업을 일부러 좋게 평가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실제 EGS평가원이 집계한 국내 상장사의 2022년 사외 이사 1인당 연봉을 보면 삼성전자(1억8127만원), SK(1억6640만원), SK텔레콤(1억6620만원) 등 1억원이 넘는 기업이 13곳에 달했다. KT도 같은 해 9825만원으로 억대에 육박했다. 이는 기본 연봉으로, 거마비 등을 뺀 것이다. 감사를 받는 공기업인 한전(3000만원), 가스공사(3000만원), 강원랜드(2942만원)와 비교하면 차이가 컸다.

사외 이사들의 임기는 기업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2~3년으로 연임이 가능해 최대 6년까지 보장된다. 일부 기업에선 사외 이사 임기가 끝나면 지인을 추천해 “사외 이사를 세습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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