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여권 갈등, 재난 앞에 멈췄다… 1주일간 무슨 일이
여권의 ‘투 톱’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정면충돌이 일단 최악 상황은 피한 모양새다. 두 사람은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서로 인사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짧게는 3일, 길게는 7일간 벌어진 이번 사태의 전후 사정은 이렇다.
갈등의 전조는 지난 17일 불거졌다.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깜짝 발표’한 것이다. 김 비대위원은 지난 8일 당 지도부로선 처음 공개적으로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언급하며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강조한 인물이다. 그런 김 비대위원에 대한 사실상 공천 방침을 밝히자, 대통령실에서는 “한 위원장이 당을 사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기류가 감지됐다. 여권 관계자는 “공천 문제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김건희 여사 문제가 본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김 비대위원이 JTBC 유튜브에 나와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관련,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프랑스 혁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이 드러나며 폭발했다”고 하자 여권에서는 “용산의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반응이 나왔다.
용산에서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18일 한 위원장은 명품 백 논란에 대해 “국민이 걱정하실 부분이 있었다”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당시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해 “법 앞에 예외 없다”고 했지만 명품 백 논란에 대해선 언급을 자제해왔다. 그랬던 한 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국민 눈높이’를 언급한 것이다.
용산과 한 위원장 측 기류가 위험 수위에 이르자, 19일 윤재옥 원내대표는 한 위원장에게 비공개 회동을 요청했다. 윤 원내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20분간 한 위원장과 차를 마시며 김 여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윤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도 용산 의중을 반영해 “(명품 백 논란은) 부당한 정치 공작”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윤 원내대표와 회동한 뒤에도 기자들을 만나 “(명품 백 문제는)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했다. 그러자 20일에는 대선 때 윤 대통령 수행실장을 한 ‘친윤’ 이용 의원이 단체 대화방에 “사과하면 민주당은 들개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며 김 여사가 명품 가방 문제로 사과하면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의원들의 호응은 거의 없었다.
결국 일요일인 지난 21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 요청으로 한 위원장과 윤 원내대표 등 세 사람이 비공개로 만났다. 당 차원에서 한 위원장 설득이 되지 않자 대통령실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이 실장은 윤 대통령의 총선 공천에 대한 사천 우려, 당의 김 여사 문제 대처에 관한 아쉬움을 전달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 역시 이에 반박하면서 양측 갈등 수위도 높아졌다. 대통령실은 부인했지만 이 실장은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뜻이라며 한 위원장 사퇴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한 위원장은 “정말 대통령 뜻이 맞느냐”고 재차 물었고, 이 실장도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점심 무렵 인터넷 매체 ‘쿠키뉴스’는 여권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당내에서는 “대선 당시부터 친윤 그룹의 여론 조성 방식과 비슷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공식 발표가 아닌 익명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여론 추이를 지켜보는 방식이다. 이용 의원은 곧바로 그 기사를 의원들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이때까지도 여권은 “대통령의 지지 철회가 사실일 리가 없다”며 설마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날 저녁에는 ‘채널A’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여권 주류에서 한동훈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대통령도 마음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한 위원장 측은 “용산 핵심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보도 30분 만에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뜻을 당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사퇴할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때쯤 한 위원장 측은 사퇴를 요구한 사람이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라는 사실을 여러 경로로 언론에 알렸다. 사퇴 요구 당사자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일 경우 당무 개입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사안인 만큼 윤 대통령은 이런 한 위원장 측 정면 대응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서면서도 “기대와 신뢰 철회 논란은 공정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밤 윤 대통령은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이 실장 등 용산 참모들을 불러 대책 회의를 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한 위원장에 대해 “내가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후배였다”며 복합적 감정을 나타냈다고 한다.
22일 한 위원장은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전날 3자 회동 사실을 인정하며 “내가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라고 분명히 했다. 김경율 비대위원도 김 여사 문제에 대한 태도 변화를 묻자 “저는 변한 것 없다”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의 ‘마이 웨이’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날 오후 ‘채널A’는 “윤 대통령이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썼던 나의 잘못인가 싶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양측의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자 여권 원로들까지 나서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다 죽는다”는 우려를 대통령실과 당에 전달했다.
22일 밤 충남 서천 시장에서 화재가 났고 윤 대통령은 곧바로 현장 방문 검토를 지시했다. 23일 아침 한 위원장은 당초 당 사무처 순방 일정을 바꿔 시장 방문으로 급선회했다. 한 위원장은 당사로 출근하지 않고 자택에서 바로 서천 현장에 간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각 윤 원내대표는 한 위원장도 화재 현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대통령실에 전했다. 이관섭 실장은 윤 대통령에게 한 위원장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자고 건의했고, 현장 방문을 검토한 윤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실장은 이후 한 위원장과 통화하며 일정을 조율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사전에 조율된 일정이 아니었지만 일단 만나야 된다는 양측의 공감대는 있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오후 1시 윤 대통령보다 40분 먼저 현장에 도착해 윤 대통령을 맞이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검찰에서 20년을 동고동락한 만큼 마지막 신뢰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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