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용 쥐 위령재’도 올려준 현종 스님 [김한수의 오마이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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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월 23일) 조선일보 사회면(A14면)엔 ‘이젠 반려동물 49재까지… 전용 법당도’라는 제목으로 반려동물의 천도재를 지내는 경북 영천 천룡정사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지난 4년간 개와 고양이 등 75마리의 ‘49재’를 지냈다는 사연 등이 소개됐지요.
마침 지난주엔 동식물 천도재로 유명한 강릉 현덕사 주지 현종(65) 스님이 펴낸 ‘억지로라도 쉬어가라’(담앤북스)라는 책이 신문사에 도착했습니다. 현종 스님은 지난 1997년 현덕사를 창건한 때부터 동식물 천도재를 지내왔습니다. 올해로 25년째로, 동식물 천도재 사찰의 원조 격입니다. 동식물의 극락왕생을 비는 스님과 사찰의 사연을 연이어 접하니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종교계 풍경도 바꾸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종 스님의 책에는 왜, 어떻게 동식물의 천도재를 올리게 됐는지 차분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스님이 동식물 천도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린시절의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스님은 경남 합천에 살던 초등학생 시절 빨랫줄에 앉아있던 새끼 제비를 작대기로 건드렸답니다. 제대로 날지 못한 그 새끼 제비는 그만 바닥에 떨어져 죽었답니다. 스님은 출가 후에도 그때의 충격과 죄책감을 무의식 중에 안고 살아가고 있었지요.
절에서 음력 7월 보름 백중은 ‘우란분절’이라 해서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을 위한 천도재를 올립니다. 현종 스님은 현덕사를 창건하고 백중에 천도재를 지내면서 그 제비를 위해 ‘망(亡) 합천 제비 영가’라 쓴 위패를 올리고 함께 재를 올렸다고 합니다. 스님은 “비로소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은 느낌이 들었지만 처음엔 동료 스님들과 불자들로부터 욕 많이 먹었습니다. 어디 조상님들 모시는 천도재에 제비 영가를 함께 올리느냐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은 부처님의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 즉 세상 모든 만물에는 불성이 있다고 한 말씀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그 후로 현종 스님은 매년 우란분절과 10월 셋째 주말엔 ‘사람으로 다친 영혼, 사람으로 위로하다’라는 주제로 동식물 합동 천도재를 올린다고 합니다.
동식물의 천도재를 올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의뢰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에게 보호자들이 털어놓는 반려동물에 대한 사연은 ‘가족 이야기’와 다름 없었다지요. 현덕사 마당엔 ‘표고’라는 이름의 나무가 한 그루 있답니다. 18년을 함께 살았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이 현덕사에서 49재를 지내고 마당에 강아지의 이름을 딴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천도재에는 동식물의 위패를 올리고 사람과 똑같이 과일과 떡을 올리고 반려동물이 좋아했던 간식을 올리는 등 정성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합동 천도재 때에는 1마리당 1만원씩 비용을 받지만 영천 천룡정사와 마찬가지로 49재를 따로 올릴 때에는 100만원 이상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합동 천도재를 올리다보니 대상이 점점 확대됐다고 하네요. 조류독감 유행으로 대량 살처분이 일어난 해에는 닭, 오리 등의 극락왕생을 빌고, 동해안 산불 때문에 생명을 잃은 동물, 로드킬 당한 동물들의 극락왕생도 빌었지요. 한 번은 ‘쥐를 위한 위령재’도 올렸답니다. 다소 생소하실텐데, 여기서 쥐는 신약실험용 쥐였답니다. 약사들의 의뢰로 위령재를 올렸답니다. 쥐 위령재는 좀 특별했다네요. 위패를 어떻게 쓸까 고민 중에 마침 절에 와있던 가족의 미대생 딸이 “그림을 그려드리겠다”고 했답니다. 그 학생이 위엔 ‘망 애혼 쥐 영가’라 쓰고 아래에는 서방정토로 가는 배인 반야용선에 쥐들이 올라탄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보내온 덕분에 특별한 위령재가 됐다고 합니다.
동식물 천도재를 지내면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신도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연기(緣起)의 관계라는 가르침도 되새기며 이젠 길에서 로드킬로 죽은 고라니 등 동물을 발견하면 끔찍해서 피하기 보다는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외면서 극락왕생을 빌어준다고 합니다. 현덕사는 환경을 더 소중히 여기겠다는 뜻에서 불교환경연대가 지정한 ‘녹색사찰 25호’ 현판도 걸었습니다.
현종 스님은 최근 반려견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답니다. 현덕사에는 스무살이 된 흰둥이와 여덟살짜리 현덕이 등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흰둥이는 워낙 고령이어서 스님은 ‘장수 사진’까지 촬영해 놓고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뜻밖에 현덕이가 다른 개에게 물려 먼저 세상을 떠났답니다. 스님은 전화 통화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49재를 올리며 극락왕생을 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님은 “20년 이상 겪어보니 동물을 잘 대해주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잘 해줄 수 있는 선한 사람들이더라”고 했습니다.
반려인구가 늘면서 최근에는 살아있는 반려동물을 축복해주는 천주교와 개신교 성직자들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반려동물과 반려인을 위한 종교의 보살핌 수요가 더 늘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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