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이 금쪽이?... 고려거란전쟁, 원작자와 제작진 갈등, 왜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제작진과 원작자가 드라마 전개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원작 소설을 쓴 길승수 작가는 ‘드라마 내용이 원작과 다르고, 역사적 사실과도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작진 측은 ‘길 작가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았고, 드라마와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자 길 작가가 재반박에 나서면서 양측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드라마 전개를 두고 잡음이 생긴 건 ‘고려 거란 전쟁’ 17, 18회부터다. 해당 회차에선 강감찬과 대립하던 현종이 울며 말을 타다 낙마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현종을 중2병 금쪽이로 묘사했다”는 혹평이 나온 것이다.
길 작가는 지난 15일 블로그에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극본을 썼어야 했는데, 숙지가 충분히 안 됐다”며 시청자 반응에 동조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극본 작가가 일부러 원작을 피해 자기 작품을 쓰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며 “원작을 피하려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역사까지 피해서 쓰고 있다. 16회까지는 그래도 원작 테두리에서 있었는데, 17회부터 완전히 자기 작품을 쓰고 있다”고 했다. 역사 왜곡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KBS ‘고려거란전쟁’ 제작진은 원작 소설을 벗어나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23일 입장을 냈다. KBS에 따르면, 드라마를 기획한 전우성 감독은 현종을 주인공으로 한 거란과의 10년 전쟁을 드라마화하겠다는 간략한 기획안을 작성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자료를 검색하던 중 길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하게 됐다.
제작진은 “2022년 상반기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고 이후 전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 장면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소설 ‘고려거란전기’에서 참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해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다”며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 감독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것이 1회부터 지금까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된 연유”라고 했다.
제작진은 “전 감독은 드라마 자문 경험이 풍부한 조경란 박사를 중심으로 자문팀을 새로이 꾸렸다”며 “이 작가는 1회부터 스토리 라인 및 신별 디테일까지 자문팀의 의견을 수렴해 대본을 집필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전 감독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원작 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다.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길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했다”고 했다.
이어 “길 작가는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했다”며 “이후 저는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 작가가 자신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며 “이 드라마의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이라고 했다.
대본을 집필한 이 작가도 “‘고려 거란 전쟁’은 소설 ‘고려 거란 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라며 “드라마는 KBS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다”고 했다. 이어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씬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이라며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고 어느 장면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다. 이렇게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했다.
제작진의 연이은 입장 표명에 길 작가는 “이 작가가 마치 제 위의 사람인양 보조작가가 하는 업무를 시켰다”며 자문 거절은 사실이 아니라고 재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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