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주 4.5일제, 기자에겐 그림의 떡?
업무방식 전환 등 준비도 없이 도입
일과 삶의 균형, 업무 효율성 등을 추구하는 흐름에 맞춰 주 4.5일·격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언론사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대체로 금요일엔 4시간만 일하고 퇴근하거나 매달 하루를 휴무일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해당 시간만큼 직원들의 자기계발 활동을 장려한다는 목적이다. 취지는 좋지만, 주 4.5일제를 시행하는 언론사 기자 대부분은 정작 이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콘텐츠가 나와야 하는 뉴스룸 상황, 인력 부족, 기자 업무 특수성 등 복합적인 문제가 존재하는데 무엇보다 업무 방식 전환이나 인력 충원 등 준비 작업 없이 주 4.5일제를 시행한 탓이다.
가장 최근 격주 4.5일제를 시행한 언론사는 경향신문이다. 올해 1월 토요일 신문 발행 중단에 맞춰 격주 4.5일제를 시작한 경향신문은 격주 금요일 4시간만 근무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대신, 기자 직군만 예외로 두고 매달 하루를 본인이 지정한 날짜에 쉴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기자가 한 번에 같은 날 쉬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한 결과다. 오관철 경향신문 경영기획실장은 “토요일자 지면은 나오지 않지만 기자들은 온라인 기사를 써야 할 테고 금요일, 일요일 인력을 배분해 근무하는 편집국 기존 업무 패턴이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며 “각 실국별 실정에 맞게 격주 4.5일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자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MBC와 중앙일보·JTBC 등도 격주 4.5일제를 시작했다. 노사 합의를 통해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격주 4.5일제를 도입한 MBC는 지난해 7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직원들은 격주 금요일 오전이나 오후, 4시간의 휴무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불가피하게 주 4.5일제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 시간당 1만1000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부서마다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보도부문이 주 4.5일제 사용을 많이 못하는 편”이라며 “지금 노조는 주 4.5일제 전면 시행을 요구하고 있는데, 요일을 명시할지 시간을 조절해 쓸 수 있는 게 나을지 답이 나오진 않아 계속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 5월 중앙그룹 차원에서 도입한 J.CreativeDay(제크데이)를 운영 중인 중앙일보·JTBC는 직원들이 격주 금요일 오전 근무 후 오후 시간엔 자기계발의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제크포인트를 지급해 개발에 필요한 비용도 지원한다. JTBC의 경우 부서별 상황에 따라 한 달에 하루를 쉬는 방식도 가능하다. 중앙그룹 측은 “중앙일보는 업무 특성상 제크데이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부서에서 자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다만 업무 특성상 부서 모두가 일률적으로 제크데이를 정해 쉬는 것이 아니라, 기자 개인의 스케줄에 맞춰 한 달에 2차례 금요일 제크데이를 신청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2019년 12월 언론사 최초로 ‘임금 하락 없는 주 4.5일제’를 도입한 곳이다. 일단 경영·관리 등 일부 부서에선 주 4.5일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편이다. 당초 경영기획실 산하 직원 대상으로 우선 시행하고 편집국 일부 기자를 포함한 전체 구성원 3분의 1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지금도 취재·편집·영상부서, 논설실 등의 구성원은 주 4.5일제 적용 대상에서 빠져있는 상황이다. 이원세 한겨레 인재개발부장은 “연초 4.5일제 대상 부서를 확정하는 작업을 한다”며 “사실상 주당 4시간을 유급 처리해주는 상황에서 부서별 4.5일제 적용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주당 40시간 초과 근무가 발생하지 않는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사마다 시행 과정에서 여러 조정을 통해 주 4.5일제가 최대한 활용될 수 있게 노력하고는 있다지만, 기자들에게 이 제도가 안착되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한 MBC 기자는 “주 4.5일제를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뉴스는 매일 나오는 상황에서 현장 기자는 발생이 생기면 바로 나가야 하고, 애초 지금 업무 환경이 몰아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이 제도 자체가 언론사엔 성립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인력을 그만큼 뽑거나, 뉴스 생태계를 바꾸는 식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는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한 중앙일보 기자는 “일부 부서에선 제크데이를 쓴 날 발생이 생겨 취재 현장에 투입시키는 사례가 종종 있어 제크데이엔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는다는 기자들도 있다”며 “부서원이 제크데이나 연차를 쓰는지 여부가 부장 고과에 영향이 있어서인지 서류상으로는 제크데이를 넣긴 하지만 휴가라고 온전히 느낄 수는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더구나 EBS 사측은 임금협상 과정서 경영상 이유로 임금 5% 삭감 전제 주 4.5일제를 노조 측에 제시하기도 했다. 박유준 전국언론노조 EBS지부장은 “주 4.5일제 제도 시행과 무관하게 쉬지 못하고 그 대가도 받지 못하는 타 언론사 사례를 봤고, 이미 EBS에선 제작에 필요한 파견직, 계약직이 30~40%도 안 남은 상황이기 때문에 대신 사측에 인력 배치 등 사전 계획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며 “하지만 사측은 사전 계획을 계속해서 마련하지 않고 있어 협상에 난항을 겪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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