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투성이 된 '고려거란전쟁', 흠집만 내면 뭐가 남나요 [Oh!쎈 초점]
[OSEN=장우영 기자] ‘고려거란전쟁’을 두고 원작자의 폭로와 감독, 작가의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수록 상처 입는 건 ‘고려거란전쟁’이 아닐까. 원작은 원작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바라보는 시선과 건강한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영방송 50주년 특별 기획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 김한솔 서용수)이 16회 이후 상처 투성이가 되고 있다. 말을 타고 잘 달려가고 있었지만 원작자의 비판과 폭로,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고꾸라질 위기에 처했다. 16화에서 양규(지승현), 김숙흥(주연우)이 거란군에 맞서 포로를 구출해내며 장렬하게 전사하며 클라이맥스를 찍었지만, 이후 호족 세력 혁파 과정에서 일부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들이 역사적인 고증과 다르다는 주장이 ‘고려거란전기’ 길승수 작가와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면서다.
길승수 작가는 ‘고려거란전쟁’이 ‘고려거란전기’를 따라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숙지가 충분히 안 되었다고 본다. 대본 작가가 교체된 다음에는 전투신 외에는 제 자문을 받지 않아서 내부 사정을 정확히 모른다. 대본 작가가 일부러 원작을 피해 자기 작품을 쓰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원작을 피하려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역사까지 피해서 쓰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 KBS의 대하사극을 쓴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대본 집필을 맡은 이정우 작가를 비난했다.
특히 “현종의 캐릭터를 제작진에 잘 설명해 줬는데 결국 대본 작가가 본인이 마음대로 쓰다가 이 사단이 났다.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KBS 원작 계약은 출간된 ‘고려거란전쟁:고려의 영웅들’ 뿐만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고려거란전쟁:구주대첩’까지 했다. ‘고려거란전쟁:구주대첩’은 400 페이지 정도 KBS에 제공되었으며, 양규 사망 후 전후복구 부분을 담은 내용이다. 곧 드라마가 삼류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해 본다”고 말했다.
‘고려거란전쟁’ 측은 길승수 작가의 ‘고려거란전기’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별개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KBS를 통해 밝힌 전우성 감독의 말에 따르면 역사서에 남아있는 기록들이 조선보다 현저히 적은 고려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요 사건들의 틈새를 이어줄 이야기가 필요했고, 드라마의 경우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창작물이기에 제작진은 역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다 상황을 극대화하고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고려거란전쟁’만의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다.
원작을 아예 무시한 것도 아니다. 전우성 감독은 2022년 상반기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고 이후 제작 과정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 장면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고려거란전기’에서 참조했다. ‘고려거란전기’ 역시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전투 상황의 디테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품인 만큼 ‘고려거란전쟁’에서의 전쟁, 전투 장면은 보다 생생하게 표현되며 극찬을 받았다.
전우성 감독 역시 “드라마 원작 계약은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원작의 설정,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는 리메이크 형태부터 원작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한 계약까지 다양하다. ‘고려거란전쟁’ 원작 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다.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했다”고 인정했다.
전우성 감독은 길승수 작가에게 수 차례에 걸쳐 자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했고, 끝내 고사했다. 이에 ‘고려거란전쟁’ 측은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해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들에 대해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는 주장이 당혹스럽다고.
이에 전우성 감독과 이정우 작가는 길승수 작가에게 서로에 대한 존중을 요구했다. 전우성 감독은 “자신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드라마의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우 작가도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한다.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이다.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가는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이고, 영광과 오욕도 모두 제가 책임질 부분이다. 저는 드라마로 평가 받고, 소설가는 소설로 평가 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고 시청률 10.2%을 기록하는 등 대하드라마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고려거란전쟁’은 거란군이 퇴각한 뒤 바로 내부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드라마 상황이나, 작품을 둘러싼 원작자와 제작진의 의견 갈등도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인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 없이 흠집내기를 하면 ‘고려거란전쟁’에는 무엇이 남을까. 전쟁, 전투 장면에 특화된 ‘고려거란전기’는 ‘고려거란전기’대로, 드라마적 허용을 둔 ‘고려거란전쟁’은 ‘고려거란전쟁’대로 보며 비판할 건 비판하고 칭찬할 건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건강한 시선과 비판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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