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 따라 국산 해저케이블 쭉쭉 뻗는다
LS전선, 작년 3분기 수주 잔액 4조
시장 수요 큰 미국 공장 투자 임박
대한전선, 전용 공장 2025년 완공
포설선 매입 등으로 경쟁력 강화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있는 휴양지에서는 어떻게 전기를 사용할까. 해외에 서버가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한국에서도 시청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바다를 건너 국가와 국가, 육지에서 섬으로 유선통신과 전력 전송을 가능케 하는 해저케이블 덕분이다. 바닷속에서 세계 곳곳을 연결하는 전선인 해저케이블은 인터넷, 전화 등의 데이터를 전달하는 통신케이블과 육지의 고전압 전기를 전송하는 전력케이블로 나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가 간 데이터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해저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다. 영상 스트리밍 등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콘텐츠 제공업체인 구글,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도 해저케이블 투자에 적극 나섰다. 또 유럽, 미국 등 주요 국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확대와 노후화된 전력망 교체 시기, 중동의 대규모 전력망 프로젝트 등이 맞물려 전력 인프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2일 영국 원자재시장조사업체 CRU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저케이블 수요는 2022년 6조4000억원에서 2029년 29조5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해저케이블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지역들을 중심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해저케이블 수요가 쏟아지면서 전선업계는 호황이지만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사실상 몇개 없다. 기술적인 진입장벽이 높아 신규 사업자가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바닷속에 설치하는 해저케이블은 해저의 강한 압력을 견뎌야 하고, 바닷물로 인한 부식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등의 외부 충격으로부터 전선을 보호해야 해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또 문제 발생 시 복구에 최장 6개월 이상 소요돼 품질 관리도 까다롭다. 공장에서 완성된 해저케이블을 배에 싣고 바다에 설치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해저케이블 설치 전용 선박인 포설선도 필요하다.
이전까지 해저케이블 제작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기업은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프랑스 넥상스, 독일 NKT, 일본 스미모토 전기산업 정도여서 이들이 시장을 과점해왔다. 여기에 국내 LS전선이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맹추격 중이다. LS전선은 국내 기업 최초로 2009년 진도~제주 해저케이블 사업을 수주해내며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지중케이블 위주로 사업했던 LS전선은 2007년 국내 최초로 해저케이블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총사업비 3000억원을 투자해 2009년 강원 동해시에 해저케이블 전문 공장을 세웠다.
2020년에는 약 2324억원 규모의 전남 완도~제주 간 약 90㎞를 연결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 사업을 수주했다. 이후 대만과 영국에서 각각 약 9000억원, 6400억원 규모의 풍력 발전단지용 해저케이블 계약도 따냈다. 지난해 5월에는 국내 최초 HVDC 해저케이블 전용 생산 공장을 준공하기도 했다.
해저 전력케이블은 HVDC 기술과 초고압교류송전(HVAC)이 있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HVDC 기술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교류에서 직류로, 다시 교류로 바꿔 공급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HVDC가 HVAC보다 전력 손실이 적고 장거리 대용량 송전에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국내에서 최고 전압인 525㎸급 HVDC 해저·지중 케이블을 상용화한 업체는 LS전선이 유일하다.
LS전선은 지난해 5월 네덜란드 국영 전력회사 테네트의 2조원대 HVDC 케이블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개별 전선업체가 수주한 금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LS전선의 계약수주 잔액은 2022년 말 2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약 4조원으로 증가했다.
그동안 지중케이블 위주로 수주해온 대한전선도 해저케이블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대한전선은 현재 1003억원 규모의 영광낙월 해상풍력 발전 사업의 해저케이블 공급을 수주했으며, 안마 해상풍력단지 우선공급대상자에 선정됐다.
해저케이블 사업을 위해 대한전선은 2022년 2200억원을 투자해 평택·당진항 부두 근처에 대규모 해저케이블 전용 임해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2025년까지 해저케이블 1공장을 건설해 154㎸급 HVAC 해저케이블 생산을 목표로 한다.
또 대한전선은 유상증자로 확보한 4780억여원을 포함한 약 7200억원을 2027년 완공 예정인 해저케이블 2공장 건설에 투자한다. 이곳에서는 345㎸급 외부망과 HVDC 해저케이블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해저케이블 생산부터 시공까지 모두 수행하기 위해 대한전선은 지난해 해저케이블 포설선도 매입했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의 선진 시장에서 수년간 주요 전력망 공급자로서 입증해온 경쟁력을 기반으로,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해저케이블 시장을 빠르게 공략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해상풍력을 위시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수요가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가운데 극단적인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중장기 예상 케이블 부족현상은 2030년 410㎞, 2040년 2303㎞로 전망됐다. 미국 시장은 앞으로 세계 전선업계의 각축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LS전선 관계자는 “미국은 전기·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이라며 “이에 당사는 미국 투자(공장 건설)를 검토하고 있으며 투자 결정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심천식 해양케이블시험연구센터 센터장은 “더 많은 국내 전선업체들이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 및 성공을 하려면 국내 시장에서 기반을 다지고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내 해저케이블 생태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국내 해상풍력발전단지 사업에서 해외, 특히 중국 기업들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국내 해상풍력사업에 관한 정부의 강력하면서 일관된 정책 추진과 빠른 인허가 및 행정 간소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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