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액’만 맞으면 됐던 정비사업 공사비, 이젠 세부 내역도 밝혀야
설계변경 때 조정 기준도 명문화
조합과 시공사의 공사비 갈등으로 정비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일을 막기 위해 정부가 새로운 정비사업 표준공사 계약서를 배포했다. 사업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공사비 산출 근거를 공개하게 한 것이 핵심이다.
국토교통부는 공사비 산출이나 조정 근거를 보완한 정비사업 표준공사 계약서를 배포했다고 23일 밝혔다.
그동안 대다수 정비사업은 공사비 총액만 합의되면 계약을 체결했다. 시공사가 어떤 근거로 공사비를 책정했는지 알기 어렵다보니, 사업 진행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 요구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예컨대 조합이 A등급 자재를 요구했으나 시공사는 B등급 자재를 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정해 수십억원을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할 경우, 조합은 시공사 요구가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정보의 비대칭과 이로 인한 불신이 조합과 시공사의 법정 공방으로 번지면서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표준계약서는 공사비 산출 세부내역서를 첨부 문서로 제출하도록 했다. 공사비 산출 세부내역은 조합이 기본설계 도면을 제공해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사가 도면을 제공받지 못할 경우 품질 사양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품질 사양서는 조합에 제안하는 마감재·설비의 사양을 명시한 서류다.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도 지금보다 명확하게 바뀐다. 현행 계약서는 조합과 시공사의 ‘단순 협의’를 거쳐 공사비를 조정하도록 하는 등 규정이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설계변경으로 추가되는 자재가 기존 품목인지 신규 품목인지에 따라 단가 산정 방식을 달리하도록 했다. 시공사 귀책 없이 조합 측 요구로 설계를 변경할 때는 신규 품목이 추가되는 경우에 준해 공사비를 조정해야 한다.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기준도 현실화한다. 그동안은 공사비 산정 기준일로부터 실착공일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에 따라 공사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착공 이후에는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은 배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음식·의류 등 소비재에 주로 사용되는 소비자물가지수 대신 국가계약법에 따른 지수 조정률을 활용해 물가 인상분을 반영하도록 했다. 총공사비를 노무비, 경비, 재료비 등 항목별로 나눈 뒤 각각 별도 물가지수를 적용해 물가 상승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착공 이후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일부 반영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신설된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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