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제작진 원작자 갈등 폭발...진실공방[MK이슈]
총 27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32부작 KBS2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 김한솔)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김동준)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최수종)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첫방송 후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스펙타클한 전쟁신, 배우들의 열연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돌입한 ‘고려거란전쟁’은 18화에서 군현제를 놓고 강감찬과 대립하던 현종이 분노를 삭이지 못해 말을 몰다 낙마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길승수 작가는 SNS에 현종의 낙마 장면에 대해 “원작에 없다”며 “현종의 캐릭터를 제작진에 잘 설명해 줬는데 결국 대본 작가가 본인이 마음대로 쓰다가 이 사단이 났다.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대본 작가 문제가 생각보다 더 크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고려거란전쟁’ 측은 23일 직접 탄생기를 공개하며 해명에 나섰다.
전우성 PD는 현종을 주인공으로 한 거란과의 10년 전쟁을 드라마화하겠다는 간략한 기획안을 작성했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전 PD는 자료를 검색하던 중 길승수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하게 됐다. 2022년 상반기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고 이후 제작 과정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 신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소설 ‘고려거란전기’에서 참조했다.
같은 해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다.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 PD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에 자문팀을 새로 꾸려 1회부터 지금까지 소설과 다른 이야기를 보이게 됐다는 것.
같은 날, 길 작가는 SNS에 “2022년 6월경 처음 참여했을 때 확실히 제 소설과 다른 방향성이 있었다. 그 방향성은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이 되어서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도 불러들이는 스토리였다. 화들짝 놀라서 그런 역사 왜곡의 방향으로 가면 ‘조선구마사’ 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포기됐는데 원정왕후를 통해 어느 정도 살아남았다”고 반박했다.
전우성 PD는 23일 SNS에 “방영 중인 와중에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메인 연출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번 드라마의 기획부터 제작의 전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몇 가지 사실관계를 밝힌다. 드라마 원작 계약은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원작의 설정,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는 리메이크 형태부터 원작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한 계약까지 다양하다. ‘고려거란전쟁’ 원작 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당시 전투 상황의 디테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품이다.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 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길승수 작가는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했고 수 차례 자문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끝내 고사했다. 이후 저는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길승수 작가가 저와 제작진이 자신의 자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정우 작가도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KBS의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으며 처음부터 제목도 ‘고려거란전쟁’이었다”고 해명했다.
계속해서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소설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태동시키지도 않았고 근간을 이루지도 않는다”며 “이 드라마의 작가가 된 후, 원작 소설을 검토하였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신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작가는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고 어느 장면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다. 그건 원작 소설가가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원작 소설가가 ‘16회까지는 원작의 테두리에 있었으나 17회부터 그것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며 “이 드라마는 분명 1회부터 원작에 기반하지 않은 별개의 작품”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더불어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한다.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이다. 그런 식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원작 소설을 평가하고 그 작가의 자질을 비난할 수 있다. 다만 제가 그러지 않는 것은 타인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존중 때문”이라며 “굳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영광도 오욕도 모두 제가 책임질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들이 진실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작진의 입장 발표 후 길승수 작가는 자문을 거절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길 작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겠다. 이정우 작가로 교체된 다음에 회의를 갔는데, 이정우 작가가 마치 저의 위의 사람인양 저에게 페이퍼 작성을 지시하더라. 그런데 그런 페이퍼 작성은 보조작가의 업무이지, 자문의 업무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제 기억에는 관직명과 인물들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제가 ‘그건 보조작가의 업무이지, 자문이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통합해서 작성한 고려사가 있으니, 보조작가에게 시키면 된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알려주겠다’고 했더니 전 PD가 집 근처까지 찾아와서 이정우 작가가 시킨 대로 페이퍼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더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가 항변하며 자문 계약을 했지, 보조작가 계약을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했고, 전 PD는 계약 내용을 수긍하면서,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올 필요 없다고 하더라. 제가 ‘고려거란전쟁’이 어려운 내용이니 자문을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자문을 구하겠다고 전 PD가 말했다”고 했다.
또 자문을 대체할 전문가를 추천했지만, 전 PD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고. 그는 “제가 자문을 거절한 것인가? 지금이라도 사태를 거짓으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대하사극인데 역사적 맥락을 살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현종 캐릭터에서 불거진 역사 왜곡 논란과 함께 원작자와 제작진의 진실 공방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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