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손봉석 기자 2024. 1. 2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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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3일 오후 10시 KBS1 ‘시사기획 창’은 사회가 만들어 낸 시대의 역병인 고립과 외로움에 대해 조명한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바야흐로 ‘혼자’의 시대.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중은 2022년 역대 최고 수준인 34.5%까지 치솟았다. 두 집 건너 한 집은 나홀로 사는 셈이다. 혼자 밥을 먹고(혼밥) 영화를 보고(혼영) 술을 마시는 풍경(혼술)도 흔해져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혼자서 ‘잘’ 살고 있는 걸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1인 가구 절반은 자신의 마지막은 ‘고독사’가 될 것이라 본다는 연구도 있다. 혼자가 익숙해지는 만큼 관계는 낯설어지고, 외로움은 커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 드리운 외로움의 그림자는 얼마나 클까. 우리는 어떻게 외로움, 고립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1인 가구 이병남 씨가 그 치열한 순간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김태선씨를 만난 것은 해도 뜨지 않은 새벽 4시였다. 매일 이 시간 고시원을 나서 지역 내 문화시설 청소 일을 하고 있는 김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던 때도 있으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빚 돌려막기에 숨이 가빴지만, 열 살 무렵부터 혼자가 된 김 씨에게는 손을 뻗을 곳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내려갈 곳도 없다는 그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것은 가난이 아니었다. 불쑥불쑥 찾아오지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 함께 보낼 가족이 없는 명절도 병원에서 보호자를 찾는 순간도 그는 괴롭기만 하다.

경제적, 신체적, 환경적으로 취약한 사람들부터 파고든 외로움은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사회관계망의 질을 평가하는 ‘OECD 더 나은 삶의 지수’ 공동체 부문에서 한국은 41개국 중 38위에 머물렀다. 청년층의 고립은 매년 7조 5천억 원의 사회적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사회가 외로움과 고립에 치르고 있는 값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할지도 모른다.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지난해 고독사 예방 기본 계획, 고립·은둔 청년 지원 방안, 정신건강 정책 혁신 방안 등 대책을 내놓았다. 정치권에서도 전담 컨트롤타워를 신설하자는 제안을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어느 한 개인의 감정 상태로만 과소평가 되어 온 외로움. 그 얼굴을 제대로 마주해야만 할 때가 온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외로운 시대, 외로운 사회가 된 걸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의 증가, 양극화와 빈곤, 고령화 등과 함께 ‘경쟁적이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주목했다. 학업과 진로를 넘어 살아가는 모습 자체를 두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사회. 그 속에서 나날이 관계망은 옅어지고 개인은 고통스러워진다. SNS 속 ‘잘 나가는’ 타인의 일상은 우리를 더욱 쉽게 좌절하게 한다.

영국이 외로움을 사회적 차원에서 극복해야 할 ‘사회적 질병’으로 보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전담 정부 부처를 설립하고 장관을 임명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외로움·고립 문제에 대응해 왔다. 영국 의료계는 이른바 ‘사회적 처방’을 시작했다. 환자에게 의약물 위주의 치료 대신 사람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는 치료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노년 1인 가구 홍정자 어르신은 강원도 원주에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해당 프로그램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실향민으로 마음 둘 데 없이 살아왔던 그녀는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진짜 가족’이라며, 한평생의 외로움을 내려 두었다.

더불어 정부는 지자체를 통해 1인 가구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김태선씨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고시원 방에서 보내다, 이제는 지자체 안의 자조 모임에 나가며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고시원 바깥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한 김 씨는 이제 희망 속에 다음을 꿈꾼다.

하지만 공적 안전망만으로 외로움·고립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전통적 가족의 의미가 옅어지면서, 개인이 일상 속에서 일차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그 해결책을 찾아 광주광역시의 청춘발산마을로 향했다. 지역 학생을 후원하기 위해 폐품을 모으는 어르신들부터 마을 어르신을 고용해 샌드위치 가게를 함께 꾸려가는 청년 사장까지. 마을 주민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느슨하지만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서 고립의 시대, 그 공백을 채울 새로운 ‘가족’을 그려본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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