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단통법 폐지, 우리는 '호갱'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윤수현 기자 2024. 1. 2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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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통신사 이익 키운 문제 있지만 '호갱' 막아온 단통법
정부발표엔 가격차별 막는 방안 없어…"소수 소비자만 이득"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윤석열 정부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공언대로 단통법 폐지를 통해 '가계통신비 인하'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따라붙는다. 정부가 단통법 폐지로 인한 부작용을 막을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호갱' '공짜폰' 등 과거의 시장 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울 시내 이동통신 대리점. ⓒ 연합뉴스

단통법 이전 '호갱'과 '버스폰' 공존하던 카오스

단통법은 휴대폰 지원금 규모를 투명하게 공시하고 지원금 상한을 두는 규제다. 단통법 제정 이전, 휴대폰 시장은 '혼돈'이었다. 정보력이 뛰어난 일부 소비층은 일명 '버스폰'(버스비 수준의 휴대폰. 공짜폰과 같은 말)을 구매할 수 있었고, 고령층은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이 돼야 했다. 통신사는 가입자 확보를 위해 출혈경쟁으로 지원금을 살포했고, 제 값주고 휴대폰을 구입하는 소비자만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서비스 품질개선에 들어갈 비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단통법 제정으로 이용자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나는 극단적 차별은 줄게 됐다. 정보가 없어도 정해진 지원금을 받아 일정한 가격범위 내에서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게 돼 억울한 소비자는 사라지게 된 셈이다.

그러나 불법 지원금의 완벽한 차단은 어려웠기에 일부 소비자는 여전히 불법 지원금을 받으며 휴대폰을 구입해왔다.

단통법 도입 이후 통신사의 이익이 커지면서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통신사가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면서 실적은 고공행진했다. 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2014년 1조6000억 원 수준이었지만 2020년에는 3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3사 영역이익 추정치는 약 4조5000억 원이다.

지원금이 크게 늘어나지도 않으면서 통신비 인하 효과도 무색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추가지원금 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소비자 이익을 보장하려 했지만 개정안은 아직까지 국회 계류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통신비 지출은 2020년 11만9775원에서 지난해 1분기 13만 원을 돌파했다. 가계통신비 인상에는 5G 일상화와 데이터 소비량 증가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단통법이 통신비 상승 추세를 막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공시지원금 이상 지원해주겠다는 휴대폰 판매업자 광고 문자. 차비는 페이백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 구체적 방안 없이 단통법 폐지 발표

정부가 내세운 단통법 폐지 논리는 '통신비 부담 완화'다. 하지만 단통법이 폐지되면 전처럼 통신사들의 출혈 경쟁이 일어나고, 일부 소비자가 그 손해를 보전하는 구조로 돌아올 수 있다. 통신비가 줄어들지도 미지수다. 이전 정부가 단통법 폐지가 아닌 지원금 상향 등 방식으로 보완하려 했던 것도 부작용 우려 때문이다.

지난 22일 정부 발표를 보면 단통법 폐지 부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없었다. 또 정부는 공시지원금과 상응하는 규모의 요금 할인을 받는 '선택약정제'를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단통법 폐지와 선택약정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따라붙는다. 총선 78일을 남기고 국회가 입법에 나설지도 불확실하다.

단통법 폐지 발표 당시 현장에서 취재진도 우려를 내놓았다. 한 기자는 “(스마트폰이) 200만 원을 넘었는데 '단통법 폐지만으로 국민들의 구매 비용이 싸질 수 있다'는 것을 기사로 전하기 부담스럽다”며 “단통법이 폐지됐다고 해서 통신사가 지원금 경쟁을 할 것인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은 “지원금 지급 제한이 없어지고 통신사·유통사 간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이 이루어지면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통신사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단통법 도입 10년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유불리에 대해 각사마다 판단이 다르다”며 “대형 유통점이 많은 업체는 유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도 “업체 규모에 따라 느끼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우선 법안이 나와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의 1월22일 논평 화면 갈무리.

“시장 혼란으로 극소수 소비자만 이득”… “총선용으로 던진 정책”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22일 논평을 내고 “제도의 원래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던 만큼 폐지보다는 원래 취지대로 대폭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밀한 대책 없이 제도를 없애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비판이다.

참여연대는 “지금 단통법을 폐지하면 이통사들의 보편적인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기는커녕 불법 지원금으로 시장이 혼란해져 극소수의 소비자만 이득을 보고 그 부담이 마케팅비라는 명목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더 높다”며 “이제라도 국민을 기만하는 단통법 폐지 방침을 철회하고 공시지원금 거품 해소와 분리공시제 도입을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계통신비 완화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도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총선용으로 던진 정책”이라며 “단통법은 사실상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건데, 정책 실패라면 사과부터 해야 했다. 이후 정보 격차에 따른 소비자 차별 문제, 거대 이동통신사의 과다경쟁 등 부작용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이런 조치 없이 법 폐지를 이야기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과방위 간사)은 입장문을 내고 “(폐지에 따른)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단통법 폐지와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도개선의 실행 로드랩을 만들어 이용자 후생 확대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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