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날이다 이건, 나한테 ‘악’ 기운이 있다…” 전직 LG 26세 클로저의 좌절과 미안함, 고마움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저 선수를 탓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 되는 날이다. 이건 나한테 ‘악’ 기운이 있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고우석(26)은 여전히 LG 트윈스 시절이던 2023년 11월10일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을 잊지 못한다. 5-4로 앞선 8회말에 등판했지만 1사 2루서 황재균에게 동점 좌선상 1타점 2루타를 맞았고, 박병호에게 역전 좌월 투런포를 내줘 한순간에 분위기를 넘겨줬기 때문이다.
LG는 잠실 1~2차전을 1승1패로 마치고 수원 2연전에 돌입했다. 3차전 결과가 한국시리즈 향방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칠 게 확실했다. 그런 상황서 마무리가 역전을 허용했다? LG로선 2차전 초반 0-4로 끌려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고우석은 23일 KBO리그 112승 출신 차우찬과 코미디언 도광록이 진행하는 유튜브 칫칫 Chit Chit에 출연, 그날의 아픔을 회상했다. 그는 “솔직히 그렇게 딱 맞고 나서는 ‘진짜 안 되는 건가?’ 홈런 맞았다고 해서 내려놓고 뭐 이런 생각이 든 건 아니고 계속 최소실점으로 끊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솔직히 내려놓을 수가 없죠 한국시리즈인데. 정말 잘 들어간 공이 맞기도 하고 그런 날인 거예요. 당시 기분만 얘기하자면 그냥 그래도 ‘최소실점으로 끊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한거죠 8회에는”이라고 했다.
그렇게 8회를 정신없이 마쳤고, 고우석은 김경태 투수코치로부터 9회 등판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마침 LG는 9회초 2사 1,2루서 오지환의 결정적인 역전 스리런포가 터지면서 고우석의 부진을 만회했기 때문이다.
고우석은 “분위기가 또 그렇게 조성이 돼 가는 거예요. (2사 1루서)오스틴 딘이 볼넷으로 나가면 왠지 분위기 좀 이상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넷으로 나가자마자 불펜으로 뛰어갔다. 왠지 지환이 형이 칠 것 같았다. 그 느낌에 그래서 몸 풀었다. 근데 지환이 형이 치니 ‘와’ 할 시간도 없었다. 그냥 몸 푸는 것이었다. 다 리셋 시키고, 그 전 생각, 기억 다 지우고 또 나간거죠”라고 했다.
그러나 고우석은 9회말에 다시 흔들리고 말았다. 1사 후 김준태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내더니 정준영에게 좌전안타를 맞자 염경엽 감독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이정용이 투입됐고, 배정대를 자동고의사구로 내보냈다. 이후 김상수가 투수 병살타를 날리면서 LG의 극적인 8-7 승리.
고우석은 “뭔가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되려고 하는데 강판 되기 전 타구가 성주 형 쪽이었어요 레프트 쪽으로. 빗맞은 타구가 갔는데 내 생각엔 잡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글러브에 맞고 나갔다. 거기선 ‘진짜 안 되는 날이구나’, 저 선수를 탓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 되는 날이다 이거는. ‘나한테 악 기운이 있다’ 싶었다. 그때 딱 교체를 했다. 거기까지 간 것만으로 감독님은 저에게 기회를 충분히 준 거예요”라고 했다.
고우석은 당시 강판에 납득했다. “왜냐하면 냉정하게 봤을 때 8회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한번 더 기회를 준거죠. 8회에 내보낸 건 2이닝을 맡기려고 내보낸 건데 1이닝 그렇게 던졌다고 해서 강판시킨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밀어붙여준 거죠 감독님이.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진짜 고마운 사람은 따로 있다. 고우석은 “정말 고마운 건 정용이 형이죠. 진짜 큰 일 한 것이다. 이미 나는 역적 일보직전의 당사자로서 보고 있는데 진짜 여기서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동원이 형이 공을 잡고 공이 미트에서 떨어질까봐 걱정했는데 딱 잡고 던지더라. 안 믿겼다. 환호할 힘도 없었다. 진짜 다행이고, 살았다 싶었다”라고 했다.
고우석은 이 방송에서 LG에서 야구를 하면서 가장 고맙고, 도움을 많이 받은 선배로 임찬규를 꼽았다. 차우찬은 두 사람이 옛날부터 단짝이라고 회상했다. 고우석은 김하성과 임찬규 중 한 명만 꼽아달라는 도광록의 ‘기습’ 밸런스 게임에 임찬규를 택했다. 그러나 악몽의 그날만큼은 이정용에게 가장 고마웠을 것이다.
차우찬과 도광록은 고우석의 그날의 아픔을 두고 “큰 경험하고 메이저리그에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고우석은 그날 1⅓이닝 4피안타(1피홈런) 1탈삼진 1사구 3실점했다. 블론세이브에 이어 슬픈 혹은 안도의 구원승을 따냈다. LG는 그날 승리로 분위기를 완전히 타며 29년만의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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