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마사'까지 소환…전면전 된 '고려거란전쟁' 논란 어디까지[종합]
[스포티비뉴스=유은비 기자] '고려 거란 전쟁'의 전개를 두고 원작자와 작가·PD의 갈등이 폭발했다.
KBS2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지난 17, 18화 방송 이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두고 원작자가 나서서 비난한 뒤 드라마 작가와 PD가 반박 입장을 내놓고 원작자가 다시 대응하면서 양측의 전면전 분위기가 됐다. 자문을 두고 진실 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된 18회 방송 분에서 강감찬(최수종)과 현종(김동준)이 갈등을 빚었다. 지방 개혁 돌입을 두고 대립하던 현종(김동준)은 강감찬의 목까지 조르며 개경을 떠나라 명한 후 분노를 삭이지 못해 말을 몰며 절규하다 낙마 사고를 당했다. '마통사고' '현쪽이'라는 말이 나오는 등 이후 일부 시청자들은 현종의 캐릭터 표현과 역사 고증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특히 방송 이후 '고려거란전쟁'의 원작을 집필한 길승수 작가가 블로그를 통해 "당연히 '고려거란전쟁' 18화에 묘사된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 없다"'라며 원작과 다른 드라마 전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 논란이 커졌다.
길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숙지가 충분히 안 됐다고 본다. 대본 작가가 본인 마음대로 쓰다가 이 사단이 났다",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 KBS의 대하사극을 쓴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대본 작가 문제가 생각보다 더 크다"라며 작가를 향한 거센 비판을 남겼다.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18일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는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전개를 원작 스토리로 가기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침묵하던 '고려 거란 전쟁' 측은 일주일 넘게 관련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르자 23일, 드라마의 제작기를 공개하며 논란에 대해 간접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고려 거란 전쟁' 전우성 감독은 원작과 방향성이 달라진 이유는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합류한 후 생각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 감독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것이 1회부터 지금까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된 연유"라고 설명했다.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서는 "드라마 자문 경험이 풍부한 조경란 박사를 중심으로 자문팀을 새로이 꾸렸고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이 작가는 1회부터 스토리 라인 및 씬별 디테일까지 촘촘하게 자문팀의 의견을 수렴하여 대본을 집필하고 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KBS의 입장은 오히려 원작자의 반발을 불렀다. 해당 글이 공개된 날 길승수 작가는 블로그에 "웃기지도 않는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려 언짢은 심경을 드러냈다.
길 작가는 "내가 2022년 6월 참여했을 때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이 돼서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도 불러들이는 그런 스토리였다"라며 "내가 화들짝 놀라서 전작 KBS 드라마 '천추태후'도 있는데, 그런 역사 왜곡의 방향으로 가면 '조선구마사' 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천추태후는 포기됐는데 결국 그 이야기가 원정왕후를 통해서 어느 정도 살아남았다"라고 비판했다. '조선구마사'는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려 방송 2회 만에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던 SBS 사극이다.
강도 높은 비판에 이번엔 '고려 거란 전쟁'의 전우성 PD와 이정우 작가가 직접 나섰다. 이들은 각기 SNS에 글을 남겨 원작자의 글에 반박했다.
전우성 PD는 "'고려거란전쟁' 원작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다"라며 "길승수 작가는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했고 수 차례 자문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끝내 고사했다. 그럼에도 길승수 작가가 저와 제작진이 자신의 자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전 PD는 "길승수 작가가 자신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라며 "이 드라마의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덧붙였다.
이정우 작가 역시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소설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태동시키지도 않았고 근간을 이루지도 않았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씬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라고 해명했다.
이 작가는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기에 원작과 비교하는 거 자체가 무의미하다"라며 "그런데도 원작 소설가가 원작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1회부터 일부 전투 장면 이외에는 원작 소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마지막 회까지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길승수 작가의 거센 비난에 대해서는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한다"면서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이다. 그런식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원작 소설을 평가하고 그 작가의 자질을 비난할 수 있다. 다만 제가 그러지 않는 것은 타인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존중 때문"이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길승수 작가 역시 다시 한번 반박에 나섰다. 특히 자문 요청을 거절했다는 전 PD의 주장에 "이장우 작가로 교체된 다음에 회의를 갔는데 이정우 작가가 마치 제 위의 사람인 양 저에게 보조 작가의 업무인 페이퍼 작성을 지시했다"라고 맞받았다.
길 작가에 따르면 전 PD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나올 필요가 없다고 했고, 자신은 '고려거란전쟁'이 어려운 내용이니 자문을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전 PD가 '다른 자문을 구하겠다'고 했다는 것. 그는 "지금이라도 사태를 거짓으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대하사극인데 역사적 맥락을 살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오랜만에 KBS 대하사극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호평과 함께 전반부를 마무리해가는 '고려거란전쟁'이 역사왜곡 및 캐릭터 설정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원작자 대 제작진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시청자들은 더욱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면전에 폭로전으로까지 치달은 '고려거란전쟁' 갈등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혹은 극적인 수습을 맞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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