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건희 명품백 입 닫는 게 한동훈의 ‘선민후사’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했다. 이후 두 사람은 대통령 전용열차에 동승해 귀경했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문제 대응을 두고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고, 한 위원장은 이를 거부하면서 촉발된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연출된 행보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을 만나자 몸을 90도로 숙여 인사했고,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팔을 어루만졌다. 한 위원장은 상경 열차에서 윤 대통령과 갈등 상황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윤 대통령이 민생 지원책에 대해 건설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고, 제가 잘 들었다”고 했다.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에도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며 결기를 보이더니 정작 윤 대통령과 만나선 할 말을 못한 채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여당도 ‘윤·한 충돌’ 파장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윤핵관’ 이철규 의원은 이날 대통령실의 한 위원장 사퇴 요구를 두고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별일 아닌 해프닝이라는 식이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고 직접 밝혔는데 ‘오해’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김 여사 명품백 수수는 이런 식으로 덮을 일도 아니고 덮어지지도 않는다. 김 여사가 지난달 15일 네덜란드 순방에서 돌아온 뒤 두문불출해도 국민적 의혹은 더욱 커졌을 뿐이다.
한 위원장은 전날 취임 일성인 ‘선민후사’를 되새겼다. 그렇다면 ‘20년 상관’인 윤 대통령의 섭섭함을 달래는 것보다 여당 지도자로서 민심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그게 한 위원장이 말하는 ‘동료 시민’들이 기대하던 바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김 여사 문제에 “제 입장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면서도 그 입장이 뭔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한 위원장이 ‘선민후사’를 실천하려면 윤 대통령에게 ‘국민 눈높이’에서 ‘국민 걱정’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합당한 조치를 이끌어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사태를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종 관계를 바꿀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인의 말은 천금 같아야 한다. 한 위원장은 ‘윤석열 아바타’란 말에 “공공선 추구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 살아왔다. 누구에게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윤 대통령에 맹종하지 않고 국민들이 듣고 보고 싶어 하는 일을 과감하게 실천하길 바란다. 그래야 총선에 정치적 명운이 걸린 한 위원장에게도, 여당에도 길이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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