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가 정기예금 대체상품이라더니...'안전성' 간판 두른 銀, 위험 고지도 안 했다"
23일 양정숙의원실 등 주최 'ELS 토론회'
ELS피해자모임 참석해 은행 '불완전판매' 주장
"서류 마련해두고 이름만 적게 했다" 성토
전문가들 "은행 믿게 한 후 지속적 재가입 유도"
"고난도 상품은 판매 채널, 판매 직원 제한해야"
"집단 소송제 도입하고 CEO까지 책임 물어야"
금감원 '감독관리 미흡' 문제도 도마에
"뼈 깎는 심정으로 감독 강화해야"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제 이름을 가지고 은행에서 대리로 ELS에 최초 가입했다. 은행에서 어떠한 연락도 온 적이 없어서 가입한 사실조차 몰랐다. 고등학생인 제가 '공격 투자형 100점'이 나왔다. 심지어 담당자가 조작한 어머니 투자성향 점수보다 더 높았다. 1년 후 담당자가 은행 VIP실에 방문해달라고 했는데 '이름과 싸인만 써주면 된다'라고 했다. 어린 저는 은행원이니까 당연히 믿었고 최근에야 ELS 재가입을 위한 싸인이었음을 알게 됐다. 심지어 담당자가 저희 어머니인 척 보험사에 전화해 해지 금액을 알아낸 후 생명보험사 해지 금액을 ELS에 넣게 했다. 주말도 없이 일만 하시는 부모님은 금융에 무지해 안전성만 추구했고 오래 거래했다. 이 사실을 아는 담당자가 ELS는 확실히 안전하다며 설득했고 결국 저희 가족 전재산을 넣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무능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및 판매 과정의 위법성 △금융당국의 관리미흡을 이번 H지수 ELS 대규모 손실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ELS 상품은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에 연계돼 특정 조건을 충족할 시 약정된 투자 손익이 결정되는 고위험 상품이다. 통상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상환 기회를 주고 만기 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기준을 밑돌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가운데 50개 종목을 추려서 산출하는 지수로, 변동성이 높은 게 특징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H지수가 5100선으로 떨어지면서 은행 판매 ELS 상품 손실률이 최고 60%에 달한다. 지난주까지 만기 도래한 은행 판매한 ELS 4353억원 중 2296억원은 손실이 확정돼 투자금 대비 손실률은 53% 수준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피해자들을 상담하면서 녹인(knock-in)과 노녹인(No knock-in) 구간이 있고, 이 구간을 찍으면 손실이 얼마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라며 "6개월짜리 만기 상품으로 오인할 수 있게끔 설계가 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대부분 재가입자들은 만기가 조기에 상환되고 이자가 나오니까 안전한 것을 두 번 세 번 경험하고, 콩으로 메주를 쓴다는 직원의 말을 믿고 가입했다"라고 짚었다. 한 경로에서 반복되는 이익을 경험하게 되면 '무조건 신뢰'하게 되는 걸 경로 의존성이라고 하는데 은행들이 이를 활용해 ELS 재가입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H지수 ELS 판매에는 '은행의 탐욕'이 작용했다고 봤다. 그는 "홍콩 H지수에 연계되는 ELS 상품은 금리가 더 높았다"라며 "판매사 뿐 아니라 상품 설계사도 H지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위험성을 알고 금리를 더 높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이 고객들에게 사탕발림 영업을 하기에 맞춤형이었다는 게 김 대표 진단이다.
백주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또한 "ELS는 투자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예금성 상품, 나아가 보장성 상품처럼 표현해서 금융소비자보호법상의 취지와 목적을 완전히 무시했다"라며 "금소법상 설명 의무, 적합성 원칙, 적절성 원칙을 다 위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H지수 ELS 상품을 판 은행들의 전문성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은행들이 홈쇼핑 선착순 마감하듯 상품 판매를 서두르고, 6개월 만기 상품인 것처럼 교묘하게 투자심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은행 직원들이 대출, 예금 업무를 하다가 PB(자산관리)로 넘어가는데 직원들이 전문성이 없다고 본다"며 "H지수가 중국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예측하고 안 팔아야 하는 실력이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백 변호사는 "고위험 상품을 판매할 때 판매 장소와 판매할 수 있는 직원의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면서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국민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결 하나로 전체 피해자가 공유하고 손실의 3~10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강력한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사태 이후 금융당국의 '감독관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조건부로 은행에 초고위험 상품 판매를 허용한 금융당국이 수시로 점검했어야 하는데 미흡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금감원이 은행들에 대해 전수 수시 점검을 했어야 한다"며 "금감원에 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동화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과 시행령 개정으로 금융소비자 피해 여지를 줄였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위험상품에 대한 통제가 일선 현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점은 금융당국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부분"이라며 "다시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감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 간사는 금융당국이 대규모 피해 사건에 대해서는 CEO 책임을 묻고, 실효성 있게 마련한 내부통제 기준을 실제로 지키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직원 핵심성과지표(KPI)에 대해서도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감독당국이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신 간사는 배상에 대해 "금융당국의 고위험상품 관련 소비자보호 장치들을 종잇장처럼 만들어놓고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팔았다"면서 "이런 부분이 소비자 피해 배상에서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양정숙 의원은 "금융사들이 소비자 보호대책에 소홀히 한 결과로 H지수 ELS 피해 사태가 발생했고 금감원은 뒷수습을 하면서도 우왕좌왕 허둥대고 있다"라며 "금융사와 금융당국은 사태 수습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H지수 ELS사태 등에 대해 질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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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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