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원작 작가vsPD-작가 대립...첨예한 갈등 [★FOCUS]
최근 '고려거란전쟁'은 16회 이후 극 전개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현종(김동준 분)의 전개 상황의 답답함과 극 전개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고려거란전쟁' 원작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구 '고려거란전기')의 길승수 작가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길승수 작가는 지난 15일 자신의 블로그에 '16화 양규의 전사 이후 원작 내용'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18회(1월 14일 방송)에서 묘사된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에 없다고 전했다. 원작과 드라마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린 것.
이후 길 작가는 지난 22일에는 '20화 리뷰: 지금이 광종 시대인가'라는 글과 함께 극 중 현종과 호족의 대립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또한 여수장(송옥숙 분)의 등장, 강씨 문중 어른(안석환 분)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고려거란전쟁'의 현종 묘사, 극 전개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에 청원글까지 게재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고려거란전쟁 측은 "2020년 하반기 대하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던 전우성 감독의 기획에서 시작됐다"라고 밝혔다. 또 전" 감독은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으면서도 당대에 유효한 시사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찾던 중 11세기 초 고려와 거란과의 전쟁 시기에 주목했다. 당시 고려는 최대 패권국이던 거란을 꺾고 동아시아 전역에 200년간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열어냈다. 전 감독은 고려 황제 현종과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을 중심으로 거란과의 전쟁 10년간의 이야기를 극화하기로 하고 기획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전 감독은 기획 당시를 회상도 전했다. 전우성 감독은 "현종의 즉위부터 10년간은 전쟁과 정변이 연달아 벌어진 격변의 시기였다. 승리와 성취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살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고달펐을 것"이라며 "주인공은 황제이고 장군이라 그를 본격적으로 담아내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백성의 입장에서 전쟁과 정변은 어떤 것이었을지를 빠뜨리지 않고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 감독은 현종을 주인공으로 한 거란과의 10년 전쟁을 드라마화하겠다는 간략한 기획안을 작성했고, 본격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전 감독은 자료를 검색하던 중 길승수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하게 됐다. 2022년 상반기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고 이후 전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 씬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소설 '고려거란전기'에서 참조했다'라고 덧붙였다.
또 '같은 해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다.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 감독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것이 1회부터 지금까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된 연유이다. 전 감독은 드라마 자문 경험이 풍부한 조경란 박사를 중심으로 자문팀을 새로이 꾸렸고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이 작가는 1회부터 스토리 라인 및 씬별 디테일까지 촘촘하게 자문팀의 의견을 수렴하여 대본을 집필하고 있다'라고 했다.
'고려거란전쟁' 측은 '역사서에 남아 있는 기록들이 조선시대보다 현저히 적은 고려 시대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요 사건들의 틈새를 이어줄 이야기가 필요했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창작물이기에 제작진은 역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다 상황을 극대화하고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고려거란전쟁'만의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했다.
길 작가는 "오늘 KBS에서 해명 보도 냈더군요. 웃기지도 않는군요"라고 했다. 이어 "전PD('고려거란전쟁' 연출 전우성 PD)가 먼저 내부적인 진행 상황을 공개했으니, 저도 이제는 부담 없이 공개해도 되겠군요"라고 했다.
길승수 작가는 "제가 2022년 6월 경 처음 참여했을 때, 확실히 제 소설과 다른 방향성이 있더군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방향성은,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이 되어서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도 불러들이는 그런 스토리'였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제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죠. "전작 'KBS 드라마 천추태후'도 있는데, 그런 역사왜곡의 방향으로 가면 '조선구마사' 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그래서 천추태후는 포기되었는데, 결국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 살아남았더군요. 원정왕후를 통해서요"라고 덧붙였다.
길승수 작가의 연이은 지적이 있은 후, '고려거란전쟁'의 연출 전우성 PD와 이정우 작가가 입장문을 냈다.
전우성 PD는 '고려거란전쟁'의 원작 관련 논란에 대해 "우선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방영중인 와중에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메인 연출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번 드라마의 기획부터 제작의 전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몇가지 사실관계를 밝힙니다"라고 했다.
전 PD는 "드라마 원작 계약은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원작의 설정,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는 리메이크 형태부터 원작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한 계약까지 다양합니다"라면서 "'고려거란전쟁' 원작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당시 전투 상황의 디테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품입니다.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하였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길승수 작가는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하였고 수 차례 자문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끝내 고사하였습니다"라면서 "이후 저는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길승수 작가가 저와 제작진이 자신의 자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낍니다"라고 덧붙였다.
전우성 PD는 "아울러 길승수 작가가 자신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의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입니다. 참고로 작년 여름,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고려거란전쟁'으로 제목이 바뀌어 재출간되었습니다. 영하2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속에서, 오늘도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최선을 다해 방송제작에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끝으로 전 PD는 "이런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해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며, 앞으로도 시청자들께서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정우 작가는 입장문을 통해 "최근 원작 소설가가 블로그를 통해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이 기사화되고 이것이 와전되어, 시청자들에게 많은 부분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제 입장을 전달합니다"라고 했다.
이 작가는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닙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KBS의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으며 처음부터 제목도 '고려거란전쟁'이었습니다"라면서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소설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태동시키지도 않았고 근간을 이루지도 않습니다"라고 했다.
이정우 작가는 "저는 이 드라마의 작가가 된 후, 원작 소설을 검토하였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씬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입니다"라면서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고 어느 장면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건 원작 소설가가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또한 "이렇게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원작 소설가가 '16회까지는 원작의 테두리에 있었으나 17회부터 그것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이 작가는 "이 드라마는 분명 1회부터 원작에 기반하지 않은 별개의 작품이었습니다"라면서 "원작 소설가가 이렇게 자신의 원작과 드라마의 내용을 비교하며 거리를 두려는 이유가, 혹시라도 드라마의 오점이 자신의 원작 소설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면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드라마는 일부 전투 장면 이외에는 원작 소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1회부터 그랬고 마지막 회까지 그럴 것입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합니다.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입니다. 그런식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원작 소설을 평가하고 그 작가의 자질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러지 않는 것은 타인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존중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 작가는 "이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가는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입니다. 저는 제 드라마로 평가받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로 평가받으면 되는 일입니다"라면서 "제가 굳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영광도 오욕도 모두 제가 책임질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들이 진실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이것은 KBS와는 무관한 저의 견해임을 밝히는 바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길승수 작가는 "제가 자문을 거절했다고요! 이제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군요. 그럼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겠습니다"라고 했다.
길 작가는 "이정우 작가로 교체된 다음에 회의를 갔는데, 이정우 작가가 마치 저의 위의 사람인양 저에게 페이퍼 작성을 지시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페이퍼 작성은 보조작가의 업무이지, 자문의 업무가 아닙니다. 아마 제 기억에는 관직명과 인물들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했다.
또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건 보조작가의 업무이지, 자문이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통합해서 작성한 고려사가 있으니, 보조작가에게 시키면 된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알려주겠다.'"라면서 "그런데 전PD가 집 근처까지 찾아와서, 이정우 작가가 시킨 대로 페이퍼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항변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자문계약을 했지, 보조작가 계약을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 PD는 계약 내용을 수긍하면서도,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라고 주장했다.
길승수 작가는 "제가 '고려거란전쟁'이 어려운 내용이니 자문을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자문을 구하겠다고 전 PD가 말했죠. 마지막으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려거란전쟁이 어려운 내용이니 꼭 자문을 받아야 한다. 만일 나에게 받기 싫다면, 임용한 선생니께 받는 것을 추천한다.', 전 PD의 대답은 '알아서 하겠다.'"라고 했다.
길승수 작가는 "제가 자문을 거절한 것인가요?"라면서 "지금이라도 사태를 거짓으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대하사극인데 역사적 맥락을 살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라고 했다.
시청자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지난해 11월 첫 방송한 '고려거란전쟁'.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화제와 흥행에 성공한 가운데, 극 중반을 넘어 현종 묘사와 일부 극 전개를 두고 역사 왜곡 의혹 등 논란으로 얼룩이 생겼다. 여기에 원작 작가와 드라마의 연출, 작가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원작 작가와 드라마 연출-작가의 전쟁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논란의 끝은 과연 어떤 끝맺음을 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경호 기자 s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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