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손실 아우성] 손실 눈덩이 홍콩 ELS… "은행창구서 치매 노인에도 팔았다"

이미선 2024. 1. 2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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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토론회서 피해자 하소연
"신한·농협銀 손실없다" 권유

#60대 초반 A 씨는 2017년 정기 예금을 가입하기 위해 신한은행을 방문했다가 은행원으로부터 정기예금 대체 상품으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을 추천받고 가입했다. 2021년 A 씨는 ELS 가입을 해지하고 예금 상품을 알아보기 위해 은행을 재방문했다. 은행원은 홍콩ELS 재가입을 권유했다. A 씨는 해당 상품은 지금까지 손실 난 적이 없고, 상환 안된 적도 없다는 은행원의 말을 믿고 홍콩H지수 ELS에 가입했다.

#60대 후반 중증장애인 B 씨는 병원비 등으로 마련해뒀던 노후자금 1억원을 농협은행에 예치했다. 농협은행의 팀장은 이자가 2%포인트 높고 조기상환이 되며, 원금손실의 위험도 없는 안전한 상품이니 가입해야 한다며 권유했다. B 씨는 팀장의 안내대로 서류 특정한 곳에 체크하고 서명 날인했다. 이후에도 팀장은 6개월 후 조기상환이 가능하다며 재가입을 권유했다. B 씨는 딸이 모아둔 결혼준비금 5000만원을 털어 상품에 추가 가입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조기상환은 되지 않았다. B 씨는 농협은행에서 3년 만기 시점에 원리금을 다 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최근 홍콩H지수가 폭락하면서 ELS 상품에 가입했던 투자자들의 무더기 손실이 가시화하고 있다. 투자 피해 사례중에는 B 씨와 같은 중증장애인 판매 사례도 있어 금융권의 적극적인 손실 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투자 피해자들은 은행의 불완전판매 행태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에 나서줄 것을 금융당국에 촉구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ELS 사태 중심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양 의원을 비롯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 백주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길성주 홍콩지수 ELS피해자모임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토론회는 홍콩ELS 판매 직원의 불충분한 설명 등으로 피해를 입은 ELS 가입자들의 피해 사례 발표를 시작으로 진행됐다. 발표자로 나선 한 투자 피해자는 "몇 년 전 고등학생일 때 어머니가 홍콩ELS 상품에 대리 가입을 해주셨다"며 "심지어 담당 직원이 제 어머니인 척 보험사에 전화해 생명보험 해지 금액과 변액보험 해지 금액을 확인한 후, 해지 금액이 더 큰 상품의 해지를 권유했다. 이후 해지 금액으로 ELS에 가입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입자들은 "치매 초기 단계인 고령의 노인에게 초고위험 상품을 권유했다", "20년 이상 거래해온 은행이라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가입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등 불만을 토로했다.

홍콩ELS 상품 손실률은 60%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 17일 만기를 맞은 미래에셋증권의 '미래에셋증권 29447'의 손실률은 56.05%를 기록했다. 설상가상 홍콩H지수가 추가 하락하면서 손실 규모는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홍콩H지수가 최고점을 찍었던 2021년 상반기에 판매된 상품 만기는 올해부터 속속 돌아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에서 팔린 홍콩H지수 ELS 잔액은 19조3000억원이다. 이 중 80%에 육박하는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돌아온다. 분기별로는 1분기 3조9000억원, 2분기 6조3000억원 등으로 올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의 만기가 집중돼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에도 불완전판매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은행의 고위험 금융 상품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은행권에서 금융 상품을 취급하는 직원들 대다수는 여·수신 업무 경력자들"이라면서 "소정의 교육 과정을 거첬다고 해서 주식, 채권, 선물, 부동산 등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췄다고 볼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은행 이용 고객은 원금보장과 안정성을 기대한다. 따라서 초고위험 파생결합 ELS 상품을 권유하는 것은 적합성 원칙에 위반된다"며 "이번 사태 피해자 중엔 치매 환자도 있는 만큼 자기책임원칙에 대한 예외 적용이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피해보상을 위한 금융당국의 세부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생경제위원회 백주선 변호사는 은행이 고난도 금융상품을 못 팔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금손실이 가능한 상품은 은행에서 팔면 안된다"며 "홍콩ELS 손실이 본격화한 시기에 금융기관이 금융소비자법과 관련 규정 등을 준수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양정숙 의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당국과 금융사는 사태 책임의 원인을 외면하고, 책임 회피를 할 것이 아니라 사태 수습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 나아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양 의원은 이어 은행권을 향해 "다양한 금융상품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금융사는 단순한 상법상의 회사가 아니라 '은행법' 및 '금융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 등 금융 관계법에 따라 국민과 금융소비자의 합리적 금융 생활을 유도해야 한다"며 "소비자의 보호와 권익 강화의 법적 책임과 의무가 있는 공익적 조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미선기자 alread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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