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대출 정책과 법안 개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한겨레 2024. 1.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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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경험으로서의 임출육, 제도로서의 임출육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8일 저출생 관련 공약들을 발표했다. 과연 임신·출산·육아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담고 있을까. 사진은 대부분 자리가 비어 있는 서울 성북구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한겨레 자료사진
나는 엄마를 할머니를 어머님을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통해서 너무나도 똑똑하게 배웠단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이야.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하자면 끝도 없을 거야. 우리 엄마는 아빠랑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나왔어. 둘 다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었지만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곧장 나를 낳은 엄마는 집에 있어야 했어. 둘뿐인 서울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으니까 누군가 한 사람은 나를 돌봐야 했고 그 사람은 ‘자연스레’ 엄마가 된 거였지. 그동안 아빠는 부지런히 선생님들을 쫓아다니며 산으로 들로 나가 약초 공부를 하고 수련하고 실력을 쌓았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빠는 학교로 가서 교수가 되었어. 시간강사 시절에 생계를 맡을 사람이 필요해졌고 엄마는 그제야 일을 다시 하게 되었어. 졸업한 지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일하러 나갈 때 마음은 어떠했을지. 엄마는 그래도 그나마 전문직이니까 어디라도 나갈 곳이 있던 거라고 나에게 말했어. 더 놀라운 건 엄마는 수석입학하고 전액장학금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거지.
(본본, ‘태어나지 않을 너에게’)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혼자서 조각글을 썼다. 아이가 잠깐 장난감에 한눈이 팔렸을 때나 낮잠을 잘 때면 휴대폰 연습장에 무엇이라도 적었지만 길게 적진 못했다. 첫째를 돌보고 둘째 젖을 먹이고 이유식을 만들고 집을 치우면 하루가 그냥 가버렸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다. 마치 혈관에 찌꺼기가 쌓인 것처럼 온몸이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낮에 짬을 내서 쓰자니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배가 고파 이유식을 찾을 아이 생각에 이유식을 미리 만들어야 했다. 늦은 밤에 쓰자니 새벽 내내 이어질 새벽 수유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저 식탁 위에 갖다놓은 무선 키보드를 쳐다보기만 했다. 새벽 수유를 한 후 젖이 잘 빠지지 않은 건지 가슴이 단단했다. 콕콕 찌르는 통증에 안에 있는 모유를 빼야겠다 싶어 유축을 하려고 유축기 전원을 켰다. 그러고선 유축기가 아닌 그 옆에 있던 키보드를 집었다. 내일 아침 가슴이 아파 쩔쩔맬 것을 알면서도 피곤에 절어 졸게 될 걸 알면서도 그렇게 썼다. 사소했지만 그것을 써내는 시간이 내게는 중요했다.
(열음, ‘나의 글쓰기 연대기’)
서울국제도서전이 개최된다는 홍보물을 발견했을 때 한달 전부터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기의 컨디션을 고려하면 주어진 시간은 3시간.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 부스에서 저 부스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내 눈은 아주 바빴다. 궁금하지만 가보지 못한 출판사 부스는 사진으로 찍어뒀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유모차를 거부하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인파를 피해 기둥과 벽을 찾아 붙어 있었다. 주어진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자유를 누리기로 다짐했건만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안겨 잘 있던 아이가 내게로 팔을 뻗으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것이다. 수유실을 찾아 전시장 밖으로 나갈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수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부스와 부스 사이를 누벼가며 사람이 다니지 않는 구석을 찾았다. 나는 유모차에 걸터앉아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아기는 내 품 안에서 몇시간 만에 목을 축이며 쉴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오는 건 내 욕심이었을까. 나의 외출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날이 늘어가면서 내게 미안함과 고마움은 같은 말이 되었다.
(지애, ‘고마운 하루’)
아이를 낳은 후에 세상에 적잖이 배신감을 느꼈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임출육의 과정이 여자를 이렇게나 비참하게 만들 때가 많은데 왜 아이를 낳으면 꽃길이 펼쳐질 것처럼 다들 축하만 했던 것인지. 아니 한 사람쯤은 출산 후 근미래에 닥칠 재앙을 알려 줄 수도 있었잖아. 여하간 출산을 하고 나니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데 핏덩이를 들이밀고는 누구 하나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일을 엄마라면 당연히 알아야지, 아니 여태 그것도 몰랐냐며 천치 취급을 할 때가 많았다. 그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젖을 물리는 법이었다. 누가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애가 샘솟는다 말하는가. 누가 모성이 본능이라 말하는가. 아이를 낳는다고 바로 막 찌찌를 아무 데나 내놓고 새끼 배를 불리는 게 인생 최고의 행복이 되는 게 아니다. 수유할 마음의 준비는커녕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젖을 물리는 동안 나는 나대로 답답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용을 썼다. 젖이란 것이 신기한 게 출산 후 모유가 원활히 분비되지 않거나 혹은 적시에 배출하지 않으면 젖몸살로 돌아온다. 젖몸살이 오면 젖이 퉁퉁 부으면서 딱딱해지고 온몸에 열이 나기도 한다. 감기처럼 땀 빼고 견디면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는 게 아니라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점점 더 심해진다.
(땅콩, ‘젖믈리에의 비법’)
초등 1학년은 연필을 제대로 쥐어야 한다. 인사를 바르게 해야 한다. 책상의자에 앉아 공부할 줄 알아야 한다. 친구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하는 것 투성이인 말들이 귀에 하나둘씩 내려앉으면서, 내 방황은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만 이상한 걸까’라는 늪에 빠져버렸다. 구덩이에서 빠져나가려고 허우적댈수록 점점 더 늪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모두가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아서 최대한 주변을 밀쳐냈다. 스스로를 가두면서 생기는 건 불안, 죄책감,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견딜 만하지 못한 날의 연속이었다.
(지현, ‘별것 아닌 것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불편을 느끼며 살지라도’)

이상은 글쓰는 사람들의 모임 ‘어딘글방’ 원고들 가운데 일부다. 여·야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며 총선 전 민심 잡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출과 주택자산 직접 지원 방식을, 국민의힘은 정부조직 개편과 법안 개정을 내세우고 있다. 제도로서의 임신출산육아에 경험으로서의 임신출산육아가 충분히 반영되었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단 한번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참여한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정책은 실패할 것이다. 대출과 주택 따위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듣고 수렴하고 수용해야 할 때다.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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