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장악력’ 훼손…윤·한 충돌 봉합의 정치적 후과는?

유정인 기자 2024. 1. 23. 18: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정면 충돌 이틀 만에 만나 사실상 정치적 화해를 선언했다. 총선을 앞두고 내분은 공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봉합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파국을 막았지만 후과는 이제 시작이다. 애매한 봉합 이후 여권 내 권력 이동 속도는 빨라지고 내부의 균열 리스크는 커질 수 있다.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 대응과 공천 문제를 놓고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날 재난 현장을 둘러보는 공동 행보를 하며 화해 제스처를 공개적으로 과시했다. 지난 21일 한 위원장이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윤 대통령의 사퇴 요구를 전달받고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며 거부 의사를 밝힌 지 이틀 만이다. 서둘러 손을 맞잡은 것은 정면 충돌 의미를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 수준으로 축소하면서 ‘원팀’ 기조를 확인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까지 언론이나 제3의 인물을 통해 오가 진위 전달이 잘 안됐는데 이날 (직접 만나) 의기투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봉합 속도전에도 대통령과 여당 사령탑의 충돌을 없던 일처럼 되돌리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여권 장악력은 훼손됐다는 평가가 불가피하다. 한 위원장은 사퇴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듭 거부한 데다, 당내에서도 친윤석열계 목소리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이준석 대표를 끌어내리고, 김기현 대표 체제를 만들고 다시 찍어내는 과정을 통해 여권 권력지도에서의 최고봉에 있음을 당 안팎에 확인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취임 1년8개월만에 달라진 당 내부의 기류가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총선을 치르고도 윤 대통령에게는 3년 이상의 임기가 남는다. 여당 장악력을 국정 운영의 기반 중 하나로 삼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찍부터 달갑지 않은 결과를 확인하게 됐다.

‘윤석열 아바타’ 평가를 받던 한 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홀로서기 효과를 일부 얻었다. 지난 한 달간 비대위원장으로서 특별히 용산과 각을 세운 바 없었던 만큼 윤 대통령과 차별화하며 독자적인 정치인으로서 지지층에 각인될 기회를 잡았다. 사퇴 요구를 버텨내면서 쌓은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세워 총선 대비 주도권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별화의 수준을 두고는 고심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임기 중반도 지나지 않은 ‘여권 권력 서열 1인자’인 데다 그의 핵심 참모 출신으로서 곧바로 각을 세우기도 어려운 처지다. 한 위원장은 이날 “대통령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주도권은 한 위원장에게 더 쏠릴 가능성이 크다. 여권은 국정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아닌 한 위원장을 얼굴로 내세워 총선을 치르는 전략을 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권 내 권력의 무게추가 윤 대통령에게서 ‘미래 권력’으로 기우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야당에서는 레임덕(권력누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내부의 균열 리스크가 높아진 것은 총선을 앞둔 여권에 부담스러운 부분으로도 해석된다. 이번 사태로 대통령과 여당 사령탑 간의 충돌, 친윤계와 그 밖의 의원들 간의 충돌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재차 확인됐다. 봉합 국면에는 들어섰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론 등을 두고 당 내부의 평가 과정은 피하기 어렵다. 당장은 ‘원팀 회복’을 환영하더라도 내부에서부터 국정운영 주도권자와 방향을 둘러싸고 다른 판단들이 생길 여지가 높아졌다.

사태를 촉발한 방아쇠가 된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 대응 문제는 당분간에도 화약고로 남을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통해 여당의 이견을 허용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재차 확인시켰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두고 공개 사과나 공식 대응을 언급하는 목소리를 ‘레드라인’으로 설정한다는 것이 다시 드러났다. 그간 여당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던 공개 사과와 공식 대응 등의 목소리는 봉합 흐름에서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을 두고 갈등이 재발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공은 결국 윤 대통령이 쥔 것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놓으면 여당은 이를 ‘처리된 사안’으로 판단해 침묵할 가능성이 크다. 입장 표명이 나오지 않으면 논란이 장기화하면서 여당에 균열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충돌의 명분으로 삼은 한 위원장 측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사천’ 논란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향후 공천 과정에서도 총선에 출마한 윤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의 진로를 두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