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추억’ 특검 점퍼 입은 尹···한동훈 ‘90도 인사’
윤·한 충돌 이틀 만에 일단 봉합 양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데서 시작된 윤·한 충돌이 이틀 만에 일단 봉합되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23일 함께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돌아올 때 대통령 전용열차에도 함께 탔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마음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친윤석열계 핵심 이철규 의원은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의) 대화에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 수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해 갈등의 도화선이 됐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거취를 두고 양측의 입장차는 여전해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재난 현장에서 만난 것을 두고 “민생의 아픔을 정치쇼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큰 불이 난 충남 서천 특화시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할 때 먼저 와 있던 한 위원장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악수를 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입은 검정 패딩 점퍼는 7년 전 한 위원장과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즐겨 입었던 옷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들은 소방본부장의 화재 진압 상황 보고를 들은 뒤 화재 현장을 함께 걷고 시장 상인들을 만났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태흠 충남지사, 지역구 의원인 장동혁 사무총장(충남 보령·서천),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 등이 함께 했다.
한 위원장은 돌아오는 길에 윤 대통령 제안으로 대통령 전용열차에 함께 타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을 포함해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들과 관계부처 장관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은 김밥을 먹으며 민생 정책과 서천 지역 지원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의 충돌 사태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날 함께 현장행보하면서) 행동으로 이미 말을 한 것”이라며 “이심전심처럼 ‘윤심 = 한심’이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다시 회동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위원장은 서울역에 내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님에 대해서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게 변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열차에서는 “(대통령이) 민생 지원에 관해 건설적인 얘기를 많이 하셨고 제가 잘 들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민생을 챙기고 이 나라를 잘 되게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며 “최선을 다해서 4월10일(총선일)에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말했다. 갈등을 딛고 다시 대통령과 함께 총선 승리를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만남을 계기로 파문이 가라앉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은 충돌이 공개된 후 ‘로우키’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충돌이 장기화하는 것보다 서둘러 사태를 봉합하는 게 좋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 위원장으로 총선을 치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며 “의견이 달라서 생겼던 해프닝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열차까지 같이 타니 짧지 않은 시간 대화를 한 것”이라며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하면 좋은 쪽으로 결론이 잘 나지 않겠냐”고 말했다.
당에서도 갈등을 잠재우는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친윤석열계 핵심 이철규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이관섭 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에 대해 “(윤재옥 원내대표까지) 세 분이 만나 우려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과정에서 대화에 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런 오해는 금방 풀리고 긍정적으로 수습·봉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도 YTN 라디오에서 “두 분 다 (총선 승리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가볍게 보지 않을 것”이라며 “조금 지나면 오해가 시원하게 풀리고 단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 사퇴론을 주도적으로 퍼뜨렸던 이용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잡았다가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갈등은 김 위원 거취를 두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친윤계에서는 김 여사를 비판할 때 ‘마리 앙투아네트’를 언급하고, 서울 마포을 전략공천 논란이 있었던 김 위원이 비대위원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철규 의원은 한 위원장이 김 위원의 마포을 출마를 다른 지도부와 사전 조율했다는 보도를 두고 “그렇게도 보이겠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재차 문제 삼을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한 위원장 측은 김 위원이 비대위원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위원장 측 인사는 이날 통화에서 “한 위원장이 김 위원 출마를 두고 사전에 가장 많이 논의했을 분이 인재영입위원장인 이 의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해임 사유도 되지 않고, 총선에 이기려면 당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을 해임하면 이번 갈등 국면에서 한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밀린 모양새가 된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한 위원장이 총선에서 중도층 지지를 받기 위해선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또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두 사람의 알력 다툼이 생길 것이란 전망이 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찾은 시장에서는 피해 상인들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해 분노를 표했다. 김현자 민정수산 대표(61)는 이날 경향신문 기자를 만나 “점포가 다 탔다. 생계가 막막하다”며 “그런데 대통령은 1층에서 몇 마디 하고 바로 가고, 우리가 보러 가니 경호원들이 막았다. 대통령이 불 난 거 구경하러 왔나”고 말했다.
재난 현장을 정치적 목적에 동원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아무리 윤석열-한동훈 브로맨스 화해쇼가 급했다지만,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된 서천특화시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을 어떻게 배경으로 삼을 생각을 하냐”면서 “국민의 아픔은 윤석열-한동훈 정치쇼를 위한 무대와 소품이 아니다”고 말했다. 허은아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위원장 어깨를 두드리면서 정작 피해 상인들의 눈물을 외면한 대통령의 행보”라며 “민생의 아픔마저 정치쇼를 위한 무대 장치로 이용하려는 것 아닌지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희용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한 위원장의 현장 행보를 하나의 ‘정치쇼’로 폄훼한 민주당의 저급한 현실 인식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즉각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은 특별재난지역선포 가능 여부를 검토하고 혹시 어렵더라도 이에 준해서 지원하겠다고 했고, 행안부는 특별교부세 20억원을 서천군에 긴급 지원한다고 했다”며 “이래도 정치쇼인가”라고 반박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