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 ‘V2’의 디올백, 용산은 오늘도 잠 못 든다
엿새 전 새벽 2시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평 변호사의 페이스북 자작시에 ‘좋아요’를 눌렀다. 제목은 ‘슬픔의 의미’. “이제는 나의 때가 지나갔다고/ 헛헛한 발걸음 돌리니…”로 시작하는 시다. 대선 때 일찌감치 공개 지지해 ‘윤석열 멘토’로 불린 그는 얼마 전 “임금님놀이” “수직적 당정관계” “검찰정권”이라며 대통령을 직격했다. 왜 좋아요를 눌렀지? 시가 좋다는 건가? 세상을 멀리하겠단 말이 좋았나? 그러다 사람들의 눈이 다시 꽂힌 건 새벽 2시다. 대통령은 왜 깨어 있었지?
밤에 대통령이 뭐 하고, 누구를 만나는가. 정가의 영원한 관심사다. 보고서(DJ)와 책(문재인)을 보고, 인터넷(노무현)과 드라마(박근혜)를 즐긴다고 회자됐다. 꼭두새벽에 기동한 MB는 유달리 밤 얘기는 적다. 관저에서 만난 박철언(노태우)·김현철(YS)·박지원(DJ)·유시민(노무현)·이재오(MB)·최순실(박근혜)·김경수(문재인)는 ‘당대의 복심’이다. 대통령과의 거리가 권력이었다.
윤 대통령은 야화(夜話)가 많은 쪽이다. 십중팔구 술이 얹어진다. 새벽까지 대통령과 마셨다고 자랑하는 ‘찐윤’이 있고, 유럽행 전용기에서 대통령이 어느 ‘단명 장관’의 총선 출마를 권할 때도 술이 있었다. 옷 벗은 후배 검사에겐 “○○야”, 정치 원로에겐 “석열이에요”. 서초동과 여의도엔 한밤중 술 마시다 불쑥 걸려온 대통령 전화 얘기가 한둘이 아니다. 국무회의 전날 용산의 ‘저녁보고’ 회의는 곧잘 자정 무렵까지 폭탄주로 이어진다 한다. 대통령이 술을 좋아할 수 있다. 하나, ‘예스맨’ 만나면 민심과 멀어지고 직접 거는 전화가 여기저기 ‘비선·실세’ 입방아를 낳는 게 대통령의 술자리다.
잠이 안 올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 디올백’이 일파만파다. “함정 몰카”라 해도 “왜 받았냐”, 세상은 사과하란다. 돌이켜보면, 디올백 앞에 ‘도이치모터스 특검법’, 그 앞에 ‘양평고속도로 의혹’, 대선 때 ‘경력 조작과 내조 약속’까지 3년째 쌓인 업보다. 한동훈(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그 여론을 ‘국민 눈높이’라 했다. 김경율은 사치스러운 프랑스 왕비 앙투아네트에 견줬고, 그의 마포을 출마에 한동훈이 힘 실었다. 역린을 건드렸을까. 대통령은 “한동훈 사퇴”로 받아쳤다. 실권자는 나, 지금 홀로 설 자는 없다는 경고였다. 한동훈은 “총선까지 임기”라며 버텼다. 두 권력은 금이 갔다. 그러곤 23일 불난 서천시장에서 한동훈이 대통령에게 90도 인사했다. 이 냉온탕은 미봉일까. 한동훈이 명품백에 입 닫는 건 그가 말한 ‘선민후사’와 배치된다. 수도권 여당 출마자들의 한숨은 또 다른 불씨다. 디올백 사태는 ‘정치인 한동훈’의 이미지, 내상, 잠재성장률을 가를 정치적 사건이 됐다.
누구 탓할 것도 없다. 이 많은 혼돈의 발단은 대통령이다. ‘체리따봉’으로 이준석 쳐내고, 김기현도 뒤로 물린 당무개입은 목도한 대로다. 보수 내전의 속살도 대통령은 ‘한동훈 사천’이라 썼고, 저잣거리에선 ‘윤석열의 순애보’ ‘권력 사유화’로 읽는다. 이 검찰국가도 누가 만들었는가. 힘센 부처는 검찰 네트워크가 쥐락펴락하고, 2년 새 옷 벗은 검사 69명이 기업으로 갔다. 검찰 고위직은 오늘도 윤석열 사단으로 채웠다. 가던 길 가란 뜻이다. 출사표 던진 검사들이 총선에서 생환하면, “법조인이 폭넓게 정·관계에 진출하는 게 법치국가”라던 대통령 말이 완성된다. 그 속에서 ‘V2’로 불린 김건희 리스크가 움트고 커온 것이다. 검사가 제일 못하는 게 사과·경청이다. 칼잡이는 그 칼의 무서움을 안다. 하나, 시민 눈높이에서 사과·특검 없는 김건희 출구는 없어졌다. 나라꼴이 바로 되려면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그 탁견에, 지금도 무릎 치는 그림이 있다. 김건희 여사와 칼 든 검사들만 태워 고교생이 그린 카툰 ‘윤석열차’다. 그 열차는 질주할까 멈춰 설까. 총선이 갈림길이다. 야권도 제 코가 석 자다. 제1야당 대표는 대선 때 ‘이재명의 민주당’을 앞세웠다. 지금은 ‘민주당의 이재명’이 맞다. 팬덤 ‘재명이네 마을’도 이장은 놓으라고 싶다. 정권 심판과 통합을 이끌 야권 리더에겐 솔선·연대와 호시우행이 먼저다.
2022년 3·9 대선이 6·1 지방선거를 덮쳤다면, 이 총선 밑엔 다시 대선이 흐른다. ‘정치인 한동훈’이 ‘검사 한동훈’을 지우고, 이재명은 이재명을 넘어야 산다. 이준석·이낙연이 이끄는 3지대도 꿈틀거린다. 승자는 발광체로 빛 발하고, 패자는 반사체로 빠질 게다. 누가 웃을까. 낮추고 비우고 고쳐서 감동 주는 쪽이, 왜 표 달라는지 절박한 정치가 이긴다. 여의도는 길싸움하고 용산은 불면의 밤을 보낼 총선이 77일 앞에 다가섰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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