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에 간첩 누명 씌워 ‘이중스파이’ 만든 방첩사…역용공작 드러났다

고경태 기자 2024. 1. 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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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재일 유학생 출신을 간첩 혐의로 영장 없이 검거한 뒤 공작원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역용공작'을 진행하다가 공작이 종료되자 구속시킨 사건의 전모가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전 보안사) 내부 수사기록에 의해 드러났다.

이번에 나온 보안사의 역용공작 문건은 그동안 군 수사기관이 어떻게 민간인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고 이중스파이로 역이용하려다 활용 가치가 사라지면 구속했는지 그 전모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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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1971년 서병호씨 국가보안법 위반 불법구금 사건
재일 대남공작원 유인 위해 4개월 공작하다 중단되자 구속
서병호씨 등의 구속을 전하는 1971년 9월23일치 동아일보 지면.

1970년대 초반 재일 유학생 출신을 간첩 혐의로 영장 없이 검거한 뒤 공작원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역용공작’을 진행하다가 공작이 종료되자 구속시킨 사건의 전모가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전 보안사) 내부 수사기록에 의해 드러났다. 납북귀환어부를 역용공작 대상으로 추진하려던 내용이 담긴 문서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특정 사건에서 역용공작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당한 분량의 자료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3일 오후 열린 전체위원회에서 고 서병호(1936년생, 2021년 사망)씨의 자녀가 신청한 국가보안법 위반 및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사과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조치 등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방첩사 존안자료 등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수사기록을 확보해 서씨가 불법구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2017년 서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 청구를 했으나 법원은 “불법체포·감금돼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가 입수한 서씨의 보안사 수사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용공작이다. 역용공작이란 적국의 정보요원을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는 공작을 일컫는다. 이번에 나온 보안사의 역용공작 문건은 그동안 군 수사기관이 어떻게 민간인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고 이중스파이로 역이용하려다 활용 가치가 사라지면 구속했는지 그 전모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사기록을 보면, 보안사는 대일 공작원을 통해 서씨가 일본에서 조선장학회 장학금으로 일본 대학을 졸업한 뒤, 국내에 영주 귀국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1971년 5월1일 서씨를 간첩 혐의로 검거했다. 이후 재일 대남공작원 등 상부선을 유인·검거하기 위해 서씨의 전향을 유도하고 전향서 및 서약서, 행동지침을 자필로 작성하게 했다.

2019년 1월, 서병호씨(왼쪽)가 재심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일본에 방문했을 때 변상철 활동가(전 진실화해위 조사관)와 함께 찍은 사진. 최정규 변호사 제공

보안사는 서씨를 공작원으로 활용하는 내용의 역용공작계획을 수립하는데, 여기에 따르면 보안사는 공작 기간(1971년 5~12월) 동안 예상되는 대상자 회유비, 직장침투비, 하숙비, 피복비 등을 포함한 소요 공작금을 책정했으며, 특히 1971년 5월8~18일 11일간 보광동 수사분실에서 수사관 6명 및 피의자 3명(서씨 포함)에 대한 특별수사비를 신청해 1일 3식을 제공했다. 그러나 1971년 9월22일 역용공작계획에 문제가 발생해 공작을 종료하게 되자 서씨를 구속 송치했다.

1972년 3월 당시 서울형사지방법원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서씨에 징역 12년, 자격정지 12년을 선고했다. 항소가 기각된 뒤 그해 11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진실화해위는 서씨에 대한 보안사 내부 수사기록을 볼 때 “1971년 5월1일부터 최소한 보안사에 연행돼 전향서와 서약서 등을 제출한 같은 달 19일까지 19일간 보안사에 불법구금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보안사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대상자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개시하고, 사법 결정 이전에 오인 판단 위험에 대한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역용공작까지 하였던 점은 법령이 정한 직무범위를 벗어나 직권을 남용한 위법한 수사”라고 판단했다.

서씨의 재심 사건을 대리했던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민단·총련·일본인 각각 3명씩으로 이사회를 구성한 조선장학회의 장학금이 조총련 공작자금으로 둔갑했다”며 “서씨를 통한 역용공작은 무고한 사람을 잡아 또 다른 간첩을 ‘공작’하는 것이었지, 진짜 간첩을 활용한 공작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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