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 시기 불투명… 마냥 웃을 수 없는 휴대폰 제조사

안상희 기자 2024. 1. 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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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단말기 가격 실질적으로 인하될 수 있도록 방안 강구하라”
10년된 단통법 폐지 카드 꺼낸 정부
”제조사에도 중저가 단말기 출시 및 장려금 요구 거세질 듯”
서울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앞 홍보 문구./연합뉴스

“단통법 폐지 이전이라도 사업자 간 마케팅 경쟁 활성화를 통해 단말기 가격이 실질적으로 인하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라.”(윤석열 대통령, 2024년 1월 22일)

지난해 초부터 가계통신비 인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가 단통법(이동통신 단말 장치 유통 구조 개선법) 폐지 카드를 꺼내면서 통신사에 이어 제조사 압박에 나설 태세다. 단말기 제조사 입장에서 단통법 폐지는 통신사 간 경쟁이 활발해져 수요가 확대될 있는 사안이지만, 정부가 중저가 단말기 출시와 장려금 확대를 요구할 수 있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 통신 3사 마케팅비용 감소… 영업익은 3년 연속 4조 돌파

올해로 시행 만 10년이 되는 단통법은 소비자가 휴대폰을 어느 곳에서 구매하든 동일한 보조금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초 정부는 단통법이 시행되면 통신 3사가 보조금 경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이를 요금에 투입해 통신비가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단통법 취지와 달리 통신사들이 다 같이 돈을 안 쓰는 전략을 취하면서 전 국민이 휴대폰을 비싸게 사는 상황이 벌어졌다.

실제 통신 3사의 마케팅비용은 최근 감소세다. 23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통신 3사의 마케팅비용은 5G(5세대 이동통신) 초기 가입자 유치 경쟁으로 2019년 7조71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2% 늘어난 후 2020년 7조8100억원, 2021년 7조9500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감소세다. 통신 3사의 마케팅비용은 2022년 전년 대비 2.5% 감소한 7조7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1.6% 감소한 7조6300억원으로 예상된다. 그러는 사이 통신 3사는 지난해를 포함해 3년 연속 영업이익 4조원대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호갱을 막고자 한 법이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든 법이 된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단통법 폐지 방향은 현행 통신사 지원금 공시 의무를 없애고, 공시지원금의 15%로 제한된 판매점 제공 추가 지원금의 상한선을 없애는 게 골자다. 다만, 정부는 선택약정할인제도(선약할인)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서 그대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그래픽=정서희

◇ “정부, 제조사 규제 수단 없지만, 중저가 단말기나 장려금 요구할 수도”

문제는 단통법 폐지가 국회 입법 사항이라 언제 현실화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21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되지 않으면 4월 총선 후 22대 국회로 논의가 넘어가게 된다. 22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되기 위해서는 총선 이후 국회 구성, 법안 발의,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 상정·심사·의결, 법제사업위원회 통과, 본회의 통과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 이해관계자 간 입장차가 첨예한 만큼 언제 단통법 폐지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역시 “지금 단계에서는 언제 시행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했다. 정부가 제조사 압박을 예고한 것도 단통법을 당장 폐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통신요금의 한 부분인 단말기 가격을 낮춰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은 “단통법이 통신 3사의 이익을 보전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폐지를 환영한다”면서도 “4월 총선 때문인지 정부가 폐지 관련 조율이나 방안 없이 너무 큰 방향만 제시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단통법을 폐지해도 통신사가 담합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어 정부가 폐지와 함께 보완 정책을 같이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제조사들은 민감한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이론적으로는 제조사는 단통법 폐지로 단말기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이것이 전제되기 위해서는 통신사가 마케팅비용을 많이 써야 한다. 실제 단통법 폐지가 이뤄지기까지 정부가 제조사에 중저가 단말기 출시 압박과 단말기 가격 인하 압박이 거세질 경우 제조사에는 악재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신사가 단통법 폐지로 단말기 유통에 적극 나선다는 점은 제조사에 긍정적”이라면서도 “정부가 제조사를 규제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정책 수단은 없지만,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제조사에 중저가 단말기를 내놓거나 대리점에 장려금을 많이 주는 방식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철원 팀장은 “국내에서 제조사는 삼성이 유일한데, 정부가 단말기 가격 인하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저가 모델 출시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며 “제조사도 마냥 좋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의 뜻은 제조사뿐 아니라 단말기 유통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자율적으로 할인경쟁을 이뤄낼 마케팅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 통신업계 “예전만큼 보조금 늘릴 여력 안돼”

단통법 폐지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병태 교수는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판매자들이 담합을 하면 처벌을 해야 하는데, 단통법은 오히려 담합을 하라고 강요해 소비자 후생에 엄청난 피해를 준 세계 유일한 법”이라고 했다. 연세대 양준모 경영학과 교수는 “단통법 폐지는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시장의 조정 기능이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며 “앞으로도 소비자 중심의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고 했다.

다만 통신업계에서는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이전처럼 보조금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단통법이 시행된 10년 전에는 LG유플러스가 3G(3세대 이동통신)를 포기하면서 LTE(4세대 이동통신)에 올인, 가입자 1명이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통신업황이 둔화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단말 시장의 경쟁이 안정화되어 있고, 5G 보급률도 70%에 육박해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단통법이 폐지되면 일시적으로 보조금을 많이 쏟기는 하겠지만, 지출하는 전체 마케팅비용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통신 부문 수익성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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