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 통할까] "통신비 절감 효과 미미···독과점부터 깨야"
지원금 제한 풀지만 투자 쉽잖아
대리점 통한 환승족 공략 그칠듯
제4이통사 등 경쟁 활성화 시급
정부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이른바 단통법을 폐지하기로 했지만 이것이 통신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가계통신비를 낮출지는 미지수다. 경쟁수단이 늘었지만 시장 과점이 공고한 이동통신 3사가 마케팅비를 앞다퉈 늘리는 출혈 경쟁을 펼치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려면 새로운 경쟁수단을 적극 활용할 시장의 ‘메기’, 즉 독행기업의 등장을 이끌어내는 일이 급선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3일 통신업계와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단통법이 폐지돼도 통신사의 마케팅비가 큰 폭으로 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단통법 시행 전과 달리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률이 70%에 달해 3사가 마케팅으로 늘릴 신규 가입자가 적어졌고, 성장 둔화로 인해 투자 여력도 줄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알뜰폰(MVNO)으로의 가입자 이탈이 더 많아진 상황이라 3사 간 경쟁이 벌어질 확률은 낮다”고 분석했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단통법 폐지로 새로운 경쟁수단이 주어진다고 해서 3사가 경쟁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며 “3사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번호이동을 유인할 수 있는 소비자를 찾아나서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전략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가입자를 위해 일괄적 할인 경쟁을 펼치기보다는, 일부 대리점에 한시적으로 파격 조건을 내걸고 이를 찾아오는 ‘환승족(族)’을 우선 공략하는 국지전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환승족은 가격에 민감해 더 유리한 조건을 능동적으로 찾아다니고 작은 혜택에도 번호이동을 쉽게 하는 유동층을 말한다. 통신업계 관계자도 “전면전을 펼칠 여력이 안 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이 이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국내 스마트폰의 유통과 할인 관행이 있다. 통신사는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에게 받은 스마트폰을 대리점이나 판매점 같은 유통채널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소비자의 기기값 할인액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협의해 정하는 ‘공시지원금’과 대리점이 추가로 주는 ‘추가지원금’을 합쳐 정해진다. 추가지원금은 대리점이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고 통신사로부터 받는 영업 대가인 ‘판매수수료’와 일부 매장에만 인센티브로 추가 지급되는 ‘판매장려금’의 일부로 충당된다.
대리점은 재량껏 추가지원금을 늘려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하고 매출을 늘리거나, 추가지원금을 아끼는 대신 이익을 많이 남기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전날 단통법 폐지가 공식화하면서 그 재량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추가지원금이 현행 ‘공시지원금의 15% 이내’를 넘을 수 있게 됐고, 3사가 서로의 지원금 정책을 쉽게 파악하고 비슷하게 맞춰갈 수 있는 ‘지원금 공시’ 제도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쟁 과정에서 일부 매장은 판매장려금 유치와 자체 재원까지 동원해 ‘공짜폰’을 파는 이른바 ‘성지’도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추가지원금의 재원이 될 판매수수료와 판매장려금을 통신 3사가 획기적으로 늘려야 실현 가능한 기대다. 2021년 7조 9500억 원까지 늘었던 3사의 마케팅비는 성장 둔화와 단말기 교체 수요 감소 등에 대응해 2022년 7조 7500억 원, 지난해 7조 6300억 원(추정)으로 내리 감소하는 추세다. 이미 2017년 상한이 풀린 공시지원금도 여전히 소극적으로 책정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는 단통법을 폐지하면서도 ‘사업자 간 과도한 차별행위’는 계속 규제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결국 정부가 추진 중인 또다른 통신 정책인 시장 경쟁 활성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단통법 폐지도 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조 박사는 “시장 플레이어들이 다 비슷하면 경쟁이 활성화하기 어렵다”며 “(점유율이 낮은) KT나 LG유플러스가 됐든 제4이동통신사가 됐든 독행기업이 나와야 단통법 폐지로 주어진 경쟁수단이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행기업은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이익에 기여하는 기업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단통법 폐지가 단말기 할인과 거의 무관한 알뜰폰 업체들의 경쟁력을 낮춰 오히려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역효과 역시 정부의 해결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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