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후라도 물가변동 반영 …"조합·시공사 공사비 분쟁 예방"
방배삼익·잠실진주 아파트 등
분담금 증가로 곳곳서 갈등
시공사, 공사비 세부내역 제출
자재별 물가변동 합리적 반영
계약서 법적 강제안돼 한계
앞으로 정비조합과 공사 계약을 맺는 시공사는 계약 체결 전 공사비 세부산출내역서를 제출하게 될 전망이다. 만약 공사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재 가격이 급격히 오를 경우, 착공 이후에도 시공사가 조합에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기 수월해질 전망이다.
23일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마련해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협회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앞서 1·10 대책에서 조합과 시공사의 공사비 분쟁을 최소화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의 후속 조치다.
인건비와 자재 가격이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오르며 정비사업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합으로선 공사비를 올려주면 개별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늘어 요구를 수용하기 쉽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익아파트 재건축 사업이다. 시공사인 DL이앤씨 측은 공사금액을 기존 3.3㎡당 545만원에서 약 43% 오른 780만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4월 조합 정기총회에서 3.3㎡당 '621만원+α'로 인상하는 방안이 통과됐지만 아직 조합 내부에서 최종 인상액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도 공사비 갈등으로 분양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삼성물산과 HDC현대산업개발은 3.3㎡당 660만원에서 889만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조합원 과반이 반대해 증액안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 같은 공사비 분쟁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 정비사업 표준계약서를 배포했다. 우선 표준계약서는 현재 공사비 총액으로만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계약 체결 전까지 시공사는 조합에 세부산출내역서를 제출해야 한다. 만약 조합이 도면을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엔 입찰 제안 시 품질사양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도 명확히 했다. 설계변경으로 추가되는 자재가 기존 품목인지 신규인지 등에 따른 단가산정방법을 제시한다.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 방법도 합리화한다. 그동안 공사비를 조정할 땐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이 적용됐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음식, 의류 등 품목의 물가를 나타내는 지수로는 건설공사 물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표준계약서에서는 총 공사비를 세부항목별로 나누고, 항목별 물가지수를 적용해 물가 상승을 반영하는 지수조정률 방식을 활용하도록 했다. 만약 조합과 시공사가 합의할 경우 예외적으로 건설공사비지수 변동률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이는 직접공사비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표준계약서는 착공 이후에도 공사비에서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자재 값이 급등하는 경우 물가를 일부 반영하도록 개선했다.
국토부는 지자체를 통해 향후 시공사와 조합이 계약을 맺을 때 이 표준계약서를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표준계약서 사용은 '권고' 성격으로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 한계다.
건설업계는 정부의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 마련 조치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부 내용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를 선정하는 시기는 조합설립인가 이후인데, 이때까지 상세도면을 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상세도면 없이 세부산출내역서를 작성하려면 전적으로 예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세부산출내역서가 실제와 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이후에도 평면을 수정하거나 마감재를 바꾸는 는 등 수시로 설계변경이 이뤄질 수 있다"며 "여의도 한양아파트만 해도 정비계획 변경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도면이 수시로 바뀌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세부산출내역서를 만들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표준계약서는 향후 공사비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재 진행 중인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재판상 화해 효력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해서 신속한 분쟁 해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김유신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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