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정당 맞나’ 골 깊어지는 트럼프-헤일리 지지자들…뉴햄프셔의 선택은
트럼프 “헤일리 내일 사라져”
헤일리 “트럼프 겁먹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본선행 고속열차를 탈 것인가, 아니면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의 선전으로 공화당 경선이 장기전으로 접어들 것인가.
그 해답은 23일(현지시간) 열리는 공화당의 두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결과에 달려있다. 아이오와에 이어 중도층 무당파가 많은 뉴햄프셔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반 이상을 득표하면 헤일리 전 대사의 추격 가능성은 거의 소멸된다. 남은 경선 일정과 무관하게 사실상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본선 국면으로 전환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헤일리 전 대사가 주지사를 지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3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뉴햄프셔 경선은 이날 오전부터 309개 투표소에서 진행되며, 아이오와 코커스와 달리 당원과 비당원 모두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전통에 따라 이날 0시에 가장 먼저 투표를 시작한 산간마을 닥스빌노치에서는 6명의 유권자 모두 헤일리 전 대사에 투표했다. 다만 유권자가 워낙 적기 때문에 전반적인 표심을 보여주진 못한다.
두 후보와 지지자들은 전날 밤까지 한표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막판 지지를 호소했다. 투표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캠프는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내의 저소득 지역에 있는 선거대책본부에는 캠프 관계자와 선거운동원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64세의 세스 브라운은 기자에게 “오늘만 40통의 ‘폰뱅킹’(전화 유세)을 했다. 내 인생 최고의 대통령을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온 ‘차이나 마가(MAGA) 팀’ 일원이라고 소개한 중국계 스테파니는 “3주 동안 350여가구를 방문했고, 오늘 저녁까지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22일 오전 프랭클린에서 열린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의 유세장도 지지자들로 북적였다. 집 마당이나 거리에 꽂아둘 용도로 헤일리의 이름이 적힌 푯말을 챙겨가는 지지자들이 눈에 띄었다.
두 후보는 양자대결 구도로 인해 양측 지지층이 결집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마지막 대중 유세에서 투표 참여를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라코니아 리조트에서 열린 유세에서 “여론조사는 환상적이지만 우리가 1%포인트 뒤진다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웃들 손을 잡고 투표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헤일리 전 대사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사퇴를 언급하며 “정치와 언론 엘리트들은 나보고 사퇴하라고 하지만 미국은 대관식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을, 민주주의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헤일리 전 대사에 대한 사퇴 압박은 점점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선대본부 앞에서 만난 트럼프 지지자 데비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망신을 당하기 전에 뉴햄프셔 직후 사퇴하는 게 헤일리를 위해선 최선의 시나리오”라며 “그러면 2028년에 (대선) 출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제 (헤일리) 한 명이 남았는데 내일이면 그도 아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날 유세에 경선 사퇴 후 자신을 지지한 세 명의 대선 주자(기업인 비벡 라마스와미, 더그 버검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팀 스콧 상원의원)들을 모두 불러모아 세력 과시에 나선 것도 압박성 메시지로 해석된다.
뉴햄프셔 유권자의 정당 지지는 대략 민주당 30%, 공화당 30%, 무당층 40%로 나뉜다. 가장 비중이 높은 무당파가 얼마나 많이 투표장에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무당파인 애슐리 부소라리는 “정당이 아니라 내 견해와 일치하고 미국을 잘 대변할 것 같은 후보에 투표해 왔다”며 “양극화된 정치에 너무 지쳤고 중간지대를 지향하는 리더를 원한다”고 말했다.
경선을 하루 앞두고 두 후보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 수위도 한층 끌어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헤일리 전 대사가 민주당원이나 무늬만 공화당원인 사람들과 ‘불경한 동맹’을 맺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소비세 부과 등의 공약이 조 바이든 행정부 정책과 닮아있다고 공격했다. 이에 헤일리 전 대사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하며 “그는 우리의 모멘텀에 겁을 먹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선거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공화당 내홍은 경선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저녁 맨체스터의 한 식당에서 열린 공화당의 경선 전야 파티에서 만난 당 관계자는 “뉴햄프셔 공화당은 단합의 전통이 있고 이번에도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본선 승리를 위해 후보를 중심으로 연합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외국인인 기자가 관찰하기에도 공화당 후보인 헤일리와 트럼프 지지자 간 인식 차와 감정의 골은 깊어 보였다. 트럼프 지지자인 브라운은 기자에게 “헤일리는 공화당의 수치인 리즈 체니와 다를 바 없다. 그는 트럼프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연방 하원의 1·6 의회 난입 사태 조사를 주도해 트럼프에 ‘미운털’이 박힌 체니와 헤일리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이다. 반면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만난 공화당의 헤일리 지지자 다수는 바이든-트럼프 재대결 시 ‘차악’을 선택하는 마음으로 바이든을 찍을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이 첫 경선지를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바꿨지만 뉴햄프셔 주정부가 주법률을 앞세워 경선 실시를 강행하면서 민주당 프라이머리도 비공식 성격으로 치러지게 됐다. 후보등록을 하지 않은 바이든 대통령은 투표용지에서 제외됐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을 적는 ‘기명(write-in)’ 투표로 힘을 실어주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소속 딘 필립스 하원의원이 30%대 지지를 받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의 기명투표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칠 경우 체면을 구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휴전을 촉구하는 의미로 투표용지에 ‘휴전’을 적어넣자는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맨체스터·프랭클린(뉴햄프셔)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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