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잇단 변심에 전기차 침체까지···64조 투자 무색해진 韓기업

서민우 기자 2024. 1. 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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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각파고 덮친 K배터리·전기차
①美 자국 우선주의 강화
IRA 장벽에 현지화 전략 폈지만
車이어 배터리 稅혜택 축소될판
②전기차 수요 둔화
미국 내 재고 114일 전년比 2배
GM·포드 전기차 생산속도 조절
③핵심광물 가격 하락
리튬·니켈값 장기간 약세도 부담
배터리 성장속도 뚝●매출도 악화
포스코그룹의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 데모플랜트 공장 및 염수저장시설. 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 가격이 오랜 기간 낮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시차를 두고 배터리셀 업계의 매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 제공=포스코홀딩스
[서울경제]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신공장(메타플랜트)을 짓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당초 기대와 달리 투자세액공제 규모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 미국발(發) 정책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국 우선주의’로 기우는 미국의 정책 변수에 기업들은 또다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투자의 속도 조절이 일단 유력한 카드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전기차 수요 감소와 리튬·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 가격 급락의 부작용이 밸류체인을 타고 업계 전반에 불어닥칠 것으로 전망돼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배터리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 리스크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배터리 기업들은 첨단 제조 시설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을 폈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7조 원 이상을 들여 전기차 신공장을 짓고 있고 국내 배터리 3사가 북미 지역에 2025년 전후로 완공 예정인 배터리 공장(단독·합작 포함)은 14곳, 전체 투자 규모만 64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쏟아부은 것만큼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가 대표적이다. 메타플랜트는 IRA가 발효된 직전인 2022년 5월 착공이 결정됐지만 IRA상 청정제조 시설에 대한 세액공제(30%) 혜택을 무난히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7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짓는 신공장인데다 8000명 이상의 고용도 창출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달랐다. 투자세액공제는 제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 등 까다로운 평가 기준이 생겼고, 지원한도도 100억달러에 불과하다. 미 행정부가 현대차그룹처럼 투자액이 커 세액공제 폭도 클 수밖에 없는 기업들을 솎아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의 관계자는 “세액공제와 관련해 미 행정부와 소통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사항이라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도를 따로 두지 않은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45X 조항)도 미국의 이익에 따라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 변수만 문제가 아니다. 본격화한 전기차 수요 둔화는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생산 조절을 넘어 배터리 업계의 투자 계획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분석 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미국의 전기차(테슬라·리비안 제외) 재고는 114일분으로 전년 동기(53일분) 대비 두 배 이상 많았다. 미국 평균 자동차 재고가 71일분인 점을 고려하면 전기차 재고는 매우 높다.

부진한 전기차 수요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전기차 생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GM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쉐보레 이쿼녹스와 전기픽업트럭 실버라도의 전기차 생산을 연기했고 포드도 자사 대표 전기차 모델인 F-150라이트닝 픽업트럭의 올해 생산 목표를 주당 3200대에서 1600대로 절반 낮췄다. 현대차·기아는 아직 전기차 생산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고 있다.

전기차의 생산 조절은 배터리 업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배터리3사의 수주잔액은 1000조 원에 이른다. 일감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생산 속도 조절을 길게 가져가면 배터리 업계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리튬·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이 오랜 기간 낮은 가격대에 머물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리튬 평균 가격은 19일 기준 1㎏당 86.50위안으로 최고점(2022년 11월)의 15% 수준이다. 고성능 배터리에 투입되는 핵심 광물인 니켈 가격도 같은 기간 톤당 1만 6036달러로 2년 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광물가격의 하락은 에코프로·엘에프 등 배터리 소재 업체의 재고 평가 손실을 거쳐 배터리셀사의 매출도 떨어뜨린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평균 13%로 전망됐다. 2022년 80.8%, 2023년 40.7%(추정)에 비하면 양적 성장 속도가 대폭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다 보니 배터리 업계도 생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전기차 수요 둔화에 미국의 세 번째 배터리 공장 건설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11월 미국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가 운영하는 조지아주 공장의 생산 규모를 축소했다. 최근에는 켄터키주 2공장 가동 계획도 연기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LG엔솔도 지난해 11월 미시간주 홀랜드공장 직원 170명을 감축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시장은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 IRA 폐지와 같은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어 판매량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갯속 정국”이라며 “배터리 시장도 가격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노해철 기자 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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