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웡카’는 한국인 촬영감독의 손에서 태어났다[인터뷰]

최민지 기자 2024. 1. 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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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촬영감독 인터뷰
“판타지라도 현실감 살려 찍었다”
미국 진출 10년…미국촬영감독협회 회원
영화 <웡카>의 정정훈 촬영 감독.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달콤한 초콜릿에 무장해제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오는 31일 극장을 찾는 영화 <웡카>는 초콜릿 같은 매력으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키고는 환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2005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인 이 영화는 초콜릿 공장의 주인이자 천재 초콜릿 메이커인 ‘윌리 웡카’의 젊은 시절을 그린다.

최고의 청춘 스타 티모테 샬라메가 웡카를 맡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조니 뎁과는 또 다른 매력의 웡카를 탄생시켰다. 휴 그랜트, 올리비아 콜먼, 샐리 홉킨스 등 명배우들의 연기 앙상블과 뛰어난 음악, 따뜻한 이야기에 힘입은 영화는 현재 전 세계 흥행 순항 중이다.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지난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공개돼 개봉 한 달 만에 5억779만달러(약 6768억원)가 넘는 글로벌 수익을 거뒀다.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를 매료시킨 이 영화가 한국인 촬영감독 정정훈(54)의 손끝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최초의 한국인 촬영감독인 그를 23일 오전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정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게끔’ 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판타지 장르의 영화라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어떤 영화들은 촬영이나 조명이 너무 화려해 이야기와 동떨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돼요. <웡카>는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컬러나 여러 효과를 적절히 쓰면서 드라마와 맞아떨어지도록,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웡카>에는 시각특수효과(VFX) 대신 와이어 액션을 통해 만들어낸 장면이 많다. 웡카의 ‘두둥실 초콜릿’을 먹은 손님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VFX 기술로 구현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제 배우들이 와이어를 달고 찍었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장치를 놓고 충분히 찍을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옛날 방식대로 철저하게 와이어로 촬영했습니다. 찍어놓고 보니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그런 점들이 참 좋았습니다.”

정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 티모테 샬라메와 함께 작업했다. 전 세계 유명 영화감독이 원하는, 지금 가장 ‘핫한’ 배우다. 정 감독은 그에 대해 “기계적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배우”라고 했다. “얼굴을 어느 각도에서 잡느냐에 따라 수천 가지 표정이 나오는 오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죠. 현장에선 정말 소탈하고 굉장히 노력하는 배우예요. ‘그냥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핫한 배우가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정 감독은 <올드 보이>(2003)를 시작으로 <친절한 금자씨>(2005), <사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 <아가씨>(2016)까지 오랜 시간 박찬욱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부당거래>(2010), <신세계>(2013) 등 그의 손을 거쳐간 히트작이 수두룩하다.

영화 <웡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웡카>는 마법사이자 초콜릿 메이커 ‘윌리 웡카’가 디저트의 성지인 ‘달콤 백화점’에서 자신 만의 초콜릿 가게를 여는 이야기를 그린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그러던 2013년 박 감독의 <스토커>로 처음 할리우드 작품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활동무대를 세계로 넓혔다. 지난 10년간 <그것>(2017),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 등 작품에 참여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이 필요했다. “저는 지금도 인터뷰(면접)를 봅니다. 아직은 ‘선택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여전히 배운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정 감독은 지난해 10월에는 미국촬영감독협회(ASC)의 정식 회원이 됐다. 한국 출신 촬영감독으로서는 최초로, 할리우드 진출 10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벌써 10년이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신세계> 끝나고 뚜렷한 계획 없이 넘어왔는데, 3년만 고생해보고 안 되면 돌아가자 생각했거든요. 그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ASC 회원이 되면서는 이제야 이방인이 아닌 동등한 촬영감독으로 인정받은 것 같았어요. 하지만 달라진 건 크게 없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더 달라지게 노력해야죠.”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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