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판 안 나는 의대 증원…정부 머뭇거리자 의료계 '총파업' 만지작?

정심교 기자 2024. 1. 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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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전공의와 대화에 참석하며 전공의들과 인사 나누고 있다. 2023.12.2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규모 발표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는 가운데, 의료계 각 단체가 총파업을 암시한 '단체행동' 결의하며 결속을 다지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늦어도 이달 초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대한의사협회와의 대화 테이블에 의대 증원 안건을 올려놓은 지난 여섯 차례(20~25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의대 증원 규모 확정 발표에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 짓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23일 복지부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의협의 허락을 받거나 동의를 구할 건 아니다. 의협과 협의는 하되, 합의할 건 아니"라면서도 "그래도 파업 등 상황을 고려하고 서로 좋게 좋게 가기 위해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총파업 같은 단체 행동을 최대한 막으면서 잡음 없는 선에서 의대 증원 규모를 찾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복지부는 의협 측에 "의협이 원하는 의대 증원 수, 산출 근거 등을 22일까지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의협은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았고,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합의점을 도출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와 의협은 24일 오후 4시 제26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대 증원안에 대해 대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의대 증원안이 지난달 6일 제20차 의료현안협의체의 테이블에 올라온 이후 25차까지 진행된 여섯 차례 테이블에서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는 데 그쳤다.

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의료4대악 정책추진 반대 전국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 참가한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충, 원격의료, 공공의대 설립 등의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전공의들 "집단행동 불사", 의대생들 "의학 교육 질 저하"
이처럼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협 간 팽팽한 '핑퐁 게임'이 이어지자, 전국 인턴·레지던트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22일,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응답했다는 전공의가 86%에 이른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대전협에 따르면 조사 대상 병원 중 500병상 이상인 병원은 27곳이다.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로 불리는 서울의 대형병원도 2곳 포함됐다.

이번 설문 조사는 전체 전공의 1만5000여 명 가운데 4200여 명이 참여한 일부 수련병원에서 실시한 자체 조사 결과라는 게 대전협의 설명이다. 대전협은 "이번 설문조사가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공식 설문은 아니"라며 "지난달 정기 대의원총회 이후 일부 수련병원에서 개별 진행해 협의회에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협은 지난달 대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정하진 못한 바 있다. 대전협은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할 때 파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정말 의사가 부족한지부터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만 놓고 봐도 대한민국 의료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대전협은 앞으로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의대 증원 대응 방안, 단체행동 참여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전협은 '예비 의사'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와도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조만간 공식회의를 갖겠다는 입장이다. 의대협은 이미 지난 15일 대한의사협회와 긴급현안 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불합리한 의대 증원 추진 문제 대응에 의협과 적극적으로 공조하기로 했다"고 밝힌 상태다. 의대생들도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 방침에 날을 세운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우성진 의대협 비대위원장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는 의대 학생,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과 직결된 이슈"라며 "정부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불합리한 수요 조사에 근거한 의대 증원 추진은 의학 교육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필수 의협회장도 "의대 증원 문제는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데도 정부가 OECD 의사 수 데이터에만 근거해 무리하게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의사 집단진료거부 관련 국민여론조사 및 의사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2.17.

복지부·의료노조 "국민 생명 볼모 행동, 용인 안 돼"
반면 대전협의 설문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복지부는 23일 입장문을 내고 "대전협에서 공개한 전공의들의 단체 행동 참여 여부 조사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건 국가의 기본 책무로, 정부는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며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필요한 모든 조치를 엄정하게 집행할 계획"이라고 반발했다.

의사와 '원팀'으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의료현장 인력들도 정부의 의대 증원책에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같은 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자 하는 전공의들이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해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은 국민을 협박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전날(22일) 단체 행동을 암시한 대전협의 설문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반박한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의료기사·간호조무사 등으로 구성돼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대전협이 단체 행동 참여 여부에 대한 설문 결과를 발표한 의도가 의심스럽다.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의대 증원은 의사 단체 빼고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긴급한 국가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대전협이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해 단체 행동에 나선다면 붕괴 위기의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국가적 과제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고, 소아과 오픈런, 원정 출산, 원정 진료로 내몰리는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규정했다. 의사 인력 부족으로 야기하는 △불법 의료 △의료사고 위험 △긴 대기시간 △만족스럽지 못한 진료 △충분하지 못한 설명 △번아웃으로 내몰리는 열악한 전공의 근무환경 등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조는 "대전협은 의대 증원을 반대할 게 아니라 환영해야 한다"며 "필수의료 기피 문제를 핑계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건 명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복지부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들이 대입을 치르는 2025학년도를 목표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교육부가 매년 4월 대학 입학 정원을 확정하기 때문에 내년 4월 전에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가 결정돼야 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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