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충전하는 힐링 뮤지컬...‘컴 프롬 어웨이’
주민, 승객이 나눈 우정 실화
한나 역 연기한 김아영 배우
“불행 이기고 희망 건네는 작품”
2월18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거대한 불행은 사람들 안에 잠재한 선한 의지를 발동시키기도 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촉발된 유대는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상처 입은 공동체를 새로운 희망으로 이끈다.
국내 초연을 진행 중인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2001년 9·11 테러로 미국 영공이 봉쇄되며 캐나다의 소도시 갠더에 불시착한 비행기 승객들과 갠더 주민들이 겪은 실화를 다룬다. 인구 9000여명의 갠더 마을 주민들은 수십 대의 비행기에서 내린 7000여명의 승객을 물심양면으로 돌본다. 마을의 시장과 교사, 버스 기사, 리포터, 경찰 등이 출장을 가던 직장인, 비행기 기장, 휴가를 떠나던 커플 등과 부대끼며 평생 이어질 우정과 추억을 쌓는다.
‘컴 프롬 어웨이’는 9·11 테러 10주년이던 2011년 실제로 갠더에 방문해 주민과 승객들을 인터뷰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2015년 미국 샌디에이고 초연 뒤 2017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고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 올리비에상 최우수 작품상 및 최우수 음악상, 드라마데스크상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대본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이뤄지는 초연으로, 브로드웨이 작품을 그대로 재연하지 않고 음악과 가사 외에 많은 부분을 재창작한 논레플리카 작품으로 구성됐다.
‘컴 프롬 어웨이’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뉴욕에서 일하는 소방관 아들을 둔 승객 한나다. 한나는 테러 사건 이후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공포에 떤다. 작품의 여러 인물 중에서 모성애라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한나 역을 맡은 배우 김아영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는 겐더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관객들이 젖어있을 때 9·11 테러의 처참함을 상기하며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캐릭터”라며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고통을 겪지만 갠더 주민들과의 우정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김아영은 2004년 뮤지컬 ‘노트르담뮤지컬 ’로 데뷔해 뮤지컬 ‘마리 퀴리’ ‘원모어’ 락시터‘,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톡톡‘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에 출연한 21년차 배우다.
‘컴 프롬 어웨이’는 12명의 배우가 주연, 조연, 앙상블의 구분 없이 거의 동일한 비중의 인물들을 연기하는 작품이다. 남경주, 서현철, 최정원, 이정열 등 실력파 배우들이 의상을 바꿔가며 1인 2역 이상의 멀티 배역을 소화하고, 의자 등의 소품을 활용해 쉴새없이 장면을 전환한다. 김아영은 “이 공연은 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아침 10시부터 밤 10까지 12시간 연습을 하는 ‘텐투텐’을 공연 준비 초반부터 실시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며 “무대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해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공연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김아영은 작품을 준비하며 겪은 마음 고생을 고백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한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김아영은 “자식 같았던 아이를 떠나보냈는데 연기를 위해 다시 상실감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무서웠다”며 “불행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 ‘컴 프롬 어웨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하며 배역 연구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컴 프롬 어웨이‘에는 관객의 인류애를 충전하는 장치들이 많다. 비행기에 갇힌 동물들을 구조하는 동물보호운동가, 당당히 성정체성을 밝히는 동성애자 커플,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 무슬림을 보호하는 주민, 유리천장을 극복한 아메리칸 에어라인 최초의 여성 기장 등의 이야기가 배치돼있다.
’컴 프롬 어웨이‘는 각박한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작품을 보고 나면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에도 9·11테러와 같은 거대한 불행이 발생했지만 피해자를 위로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불행 앞에서 공공선이 발휘되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아픔을 이용하는 기회주의적 태도가 배격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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