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나면 ‘대형’, 승객안전 나몰라라?…‘11년→16년’ 버스 차령 연장 논란
문제생긴 버스 ‘바퀴달린 흉기’
안전과 친환경 모두 추구해야
추돌 위험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차량을 멈춰주는 비상자동 제동장치(AEBS)가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졸음운전, 휴대폰 사용 등으로 버스 사고가 잇따르자 지난 2018년 이후 출시되는 차량에 AEBS 적용을 의무화했다. 다만 그전에 출시된 차량의 경우 AEBS 장착을 권고만 했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는 무엇보다 안전이 최선이다. 안전사양도 부족하고 고장위험도 상대적으로 큰 노후차량을 더 오랫동안 운행하면 그만큼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어서다. 안전에 문제가 생긴 버스는 바퀴달린 흉기로 돌변하다.
실제 버스 운행 기간을 규정하는 내구연한 제도는 도로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도입됐다.
현행법은 노선버스 차량을 최대 9년까지 운영하되 도로교통공단 검사에 합격한 차량에 한해 2년 범위에서 차령(車齡)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천연가스(CNG)버스를 비롯해 대중교통 부족 지역 등의 버스 차령을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선버스 투입 가능 기간은 최대 14년까지 늘어나고, 7년 연장 대상인 전기·수소전기버스는 최대 16년까지 노선버스 투입이 가능해진다.
법 제정 당시에 비해 버스 제작 기술이 발전했고, 배기가스 배출이 없는 친환경 차량의 도입 등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취지다.
다만, 주기적인 버스 교체 비용을 줄이기 위한 운수회사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력과 기술 등이 부족한 소규모 운수회사는 차량 보증기한 이후 필요한 정비를 제때 실시하지 못할 수 있다.
교통당국의 검사를 통과해 차령을 연장한 시내버스가 정비 부실로 운행 중 화재를 일으키며 승객의 안전을 위협한 사례도 있다.
전기·수소전기버스로 대체돼야 하는 내연기관 버스가 지속 운행되면 환경오염 문제도 발생한다.
내연기관 차량의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 물질 배출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부 대책과 상충한다.
범퍼 등에 설치된 센서로 주행 중 추돌 위험을 감지해 자동으로 차량을 멈춰주는 AEBS( Advanced Emergency Braking System)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18년 이후 출시되는 신규 차량에 차로이탈경고장치(LDWS, Lane Departure Warning System)와 AEBS 적용을 의무화했다.
다만 법 제정 이전 생산된 차량의 경우 AEBS 장착은 권고 사항에 그쳤다. 장착이 수월한 LDWS와 달리, 기존 차량에 AEBS를 설치하려면 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2015년 이전 출시된 버스는 차량 부품을 잇는 시스템이 없어 AEBS 장착 자체가 불가능하다.
안전 논란이 되고 있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는 2028년 도로 위에서 자취를 감출 AEBS 미장착 버스들은 2031년까지 운행이 가능해진다.
정비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운수회사의 경우 노선버스의 과도한 차령 연장이 승객 안전에 보다 직접적 악영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제조사 차량 보증기한이 지나면 운수회사가 모든 정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인력·기술 부족 등을 이유로 필요한 정비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 발생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7년 차령이 적법하게 연장된 시내버스가 주행 도중 엔진 화재를 일으켜 승객 6명이 긴급 대피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이튿날 같은 회사 소속 노후 버스가 또다시 운행 중 불이 나 멈춰 섰다.
당시 화재 원인으로 정비 불량이 꼽혔다. 관할 지자체는 해결책으로 9년 이상 버스의 차령 연장을 가급적 하지 않는 방안을 내놨다.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분야 세계 최대 규모 협의체인 세계대중교통협회(UITP, Union Internationale des Transports Publics)가 밝힌 버스의 차량 수명은 12년이다. 현행 국내 기준인 11년과 비슷하다.
실제 법 개정으로 차령 연장 혜택을 받게 되는 버스 대부분은 경유나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이다.
경유 버스는 일반 승용차보다 온실가스는 30배, 미세먼지는 43배 이상 배출한다.
과거 저공해 차량으로 주목받았던 천연가스버스 역시 1km당 이산화탄소 968.55g, 질소산화물 0.797g을 배출한다.
시내버스 일평균 주행거리(229km)를 감안하면 연간 한 대의 천연가스버스가 이산화탄소 80.9톤, 질소산화물 66Kg을 발생시키는 셈이다.
친환경 버스인 전기·수소전기버스는 주행 때 대기오염 물질과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실현 방안에 전기·수소차량 보급 확산 등 기존 내연기관 중심에서 친환경차 중심으로의 수송 체계 전환이 명시된 이유다.
이를 위해 2022년 기준 1.7% 수준인 친환경차의 등록 비중을 오는 2030년 16.7%까지 높일 방침이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기존 내연기관 버스의 차령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정부의 친환경차 전환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노인, 어린이, 임산부, 장애인 등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법에는 교통약자 이동편의를 위해 시내버스의 대차 또는 폐차 시 반드시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가급적 친환경 자동차를 우선 구매토록 하고 있다.
노선버스 차량의 운행 가능 기간 연장은 구매 수요 감소로 이어져 국내 버스 산업을 위축시키고 중소 버스 제작사와 부품사의 경영난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24년 대차 또는 폐차 시기가 도래하는 2350대여의 시내버스를 매출로 환산하면 연 1조1000억원 규모다.
운행 가능 기간 연장으로 노선버스 시장 수요가 장기적으로 30%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국내 버스·트럭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 1000여 곳 중 상당수는 중소기업이다. 버스 시장 침체가 이어지며 상용차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 20여개 부품사의 2022년 평균 이익률은 1% 수준으로 낮아진 상황이다.
경영난이 더욱 악화하면 신기술 개발 동력이 상실되고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설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중국산 버스 제작사와 부품사들이 그 틈을 파고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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