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결단하지 못했다면…" 울음바다 잠실벌 탄생의 모멘텀, '왕조시대' 리더십의 새출발 [특별인터뷰]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지난 2023년, 가장 큰 반전을 이룬 야구인.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이다.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 사령탑을 거치며 정상급 팀의 반열에 올린 장본인. 하지만 번번이 마지막 순간, 화룡점정에는 실패했다.
LG 부임 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 숙원을 이루지 못했다. 설상가상 와이번스 사령탑 막판에는 건강 이슈로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현장으로 복귀한 2023년. 29년 묵은 LG가의 한을 풀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LG의 숙원이자, 염 감독의 숙원이었다.
승부의 순간. 엄청 긴장됐다. 자신 뿐 아니라 29년을 기다린 LG 팬들의 염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염 감독은 스포츠조선과의 지령 1만호 특집 인터뷰에서 그 때 그 순간 압박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담스러웠죠. 1차전이 끝났는데 팬 분들이 너무 많이 오셨더라고요. 내가 만약 못해내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분들께 정말 미안하잖아요. 온 마음을 다해 성원해 주시는데. 그에 대한 부담감이 워낙 컸어요. 여기서 못하면 감독 은퇴해야 한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한거에요. 2년 내 못하면 나는 감독 그만 두고 단장이나 프런트로 가야한다고 생각했죠. 특히 이 멤버로 우승 못하면 내가 감독으로서 실력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했죠. 최고가 될 수 없는 거니까 접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요. 계약하고 생각한 게 딱 2년, 그것도 첫 해에 해야한다고 결심했어요. 여기서 실패하면 팬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감독이라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 생각으로 했어요."
어깨를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감. 전략과 뚝심으로 이겨냈다.
1차전을 2대3으로 패한 뒤 맞은 2차전을 최대 고비로 꼽는다. 선발 최원태가 무너지면서 1회 4점을 먼저 내줬다.
LG 덕아웃이,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 염 감독은 큰 결단을 내렸다. 필승조를 1회 1사 후 부터 가동했다. 승부수를 띄웠고, 5대4 역전승으로 이어졌다. 시리즈를 1승1패 균형을 맞추는 순간. 무려 7명의 필승조가 마운드에 올랐다. 3차전은 5-4로 앞서던 8회 5-7로 역전당했다가 9회 오지환의 재역전 3점 홈런으로 8대7로 이겼다.
시리즈 향방의 분수령이었다.
"사실 포스트시즌에 1회 4점 주고 어떻게 뒤집어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또 8회 역전 당했는데 9회 다시 역전을 한다? 그건 포스트시즌엔 잘 나오지 않죠. 2차전에 우리가 기선을 빼앗긴 채 그대로 졌으면 이번 시리즈는 우리가 1승4패로 지는 거였어요. 내가 빨리 움직이지 못하면 선수들이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감독인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선수단에) 보여줘야 했죠. 선발 투수를 1회 원아웃에 바꾼다? '지금은 1회다, 우리는 아직 공격이 8번이나 남았다, 페넌트레이스에서도 많이 이겼다'는 사실을 경기 중에는 선수들에게 직접 말할 수 없어요. 감독은 경기로, 투수교체로, 작전으로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요. '저 사람이 어떻게든 버텨서 뒤집으려고 하는구나'라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전달해야 했죠. 그게 결국 경기 운영이었어요."
기적 같은 역전 우승. 단합의 힘이었고, 결과였다고 해석한다.
"팬들께서 관중석에서 우는 영상을 봤을 때 그래도 이 분들께 보답을 했구나 그런 뿌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절실한 바람. 그렇게 팬들, 선수, 저 모두 할 것 없이 전체적으로 똘똘 뭉쳐 있었어요. 그 힘이로 이뤄낸거죠. 그 부분이 KT보다 우리가 강했던 것 같아요."
절체절명의 위기를 이겨낸 것은 이기는 습관 덕분이었다. 최대 약점을 간파했고, 겨우내 준비했다.
"실력을 떠나 LG의 가장 큰 단점은 우승 전력을 갖추고도 페넌트레이스도, 단기전도 고비가 오면 넘지 못하는 것이 경기를 하면서 망설임과 두려움, 이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없앨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선수들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자연스럽게 없애기 위해 결국 생각한 게 뛰는 야구였어요. 시즌에서 위기를 넘기면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포스트시즌도 넘기는 거잖아요. 첫 번째 위기가 4월이었어요. 선발이 3명이 안 됐어요. 1선발인 켈리도 안 돼서 4인 로테이션이 무너진 상태였어요. 시즌 초반에 공격적인 뛰는 야구로 선수들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략적인 부분들을 캠프 때부터 준비했죠."
우승보다 더 힘든 것이 바로 최강팀 유지다. '왕조'는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지략과 결단을 두루 갖춘 염 감독도 이 사실을 안다.
"한 번 우승했으니까 또 우승해야 진정한 것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게 왕조의 시작이죠. 지난해보다 부담은 덜해요.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우승 못한 감독이란 타이틀이 부담스러웠거든요. LG가 무관 타이틀을 29년이나 갖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죠. 그 부담을 저도, 선수들도 이겨냈으니까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가야겠죠."
우승 이후의 자칫 해이해질 수 있는 분위기. 가뜩이나 LG는 고우석의 미국진출, 이정용의 군 입대, 함덕주의 수술로 자랑하던 최강 불펜진이 크게 약화됐다.
또 다른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 그 정체가 궁금했다.
"나는 원칙이 있어요. 시즌 전에 모든 것을 그 원칙 안에 다 집어 넣죠. 이 원칙을 어겼을 때는 야구 잘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선배든 2군 선수든 다 똑같이 한다고 했어요. 내가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죠. 원칙을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정해야 합니다. 감독 하면서 항상 시즌 전에 주장 통해 단체 미팅을 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정해라, 빼달라면 빼줄게. 빼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요. 그 합의점을 찾아서 시즌 전에 고참들과 어린 선수들과 다 소통을 통해 원칙을 정하고 가는거죠."
우승 부담감을 털어낸 만큼 강팀 프라이드와 DNA만 남았다. 베이스 크기 확대와 후반부터 본격화 될 피치클락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과감하는 뛰는 야구를 실전화한 LG의 2연패 도전도 꿈은 아니다.
염경엽 감독은 스포츠조선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태평양 선수 시절이던 1995년 반려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릴 당시 스포츠조선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다.
"1995년, 인터넷 문화가 없을 때였어요. 스포츠조선이 제 결혼 청첩장을 대신해 주셨죠. 1995년 1월 22일에 결혼했는데, 스포츠조선이 1면에 큼직하게 써주셨어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죠."
어느덧 지령 1만호를 맞이한 스포츠조선. 환호와 좌절이 교차한 승부의 세계, 자신의 야구 인생을 밀착 보도해온 본지에 대해 염 감독을 이런 말로 친근감을 표현했다.
"스포츠조선 야구부에는 숙련된 기자들이 많아요.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폭 넓은 이야기를 나누기 편안하죠. 야구를 오래 맡았던 기자들이 많으니까요."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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