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혼자가 좋다’는 나라의 저출생 대책

황보연 기자 2024. 1. 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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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8일 강남구 중소기업 휴레이포지티브에서 총선 1호 공약 저출생 대책 ‘일·가족 모두행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보연 | 논설위원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추락했다는 통계가 나왔을 때 인구학자들도 크게 술렁였다. 과거 독일 통일 5년 뒤인 1994년 옛 동독 지역의 출산율이 0.77명이었다. 기존 국가시스템이 붕괴되고 극단적 불확실성이 지배하던 시기에나 나올 법한 출산율이 2022년 한국 사회에 나온 셈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구 미래 공존’에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염병 창궐이나 전쟁, 체제 붕괴를 겪지 않는 한 0점대의 출산율은 인구학에서 거의 불가능한 숫자로 여겨졌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나라가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18년(0.98명) 1.0명대가 무너진 이후로 좀처럼 반등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0명을 밑돈다. 이대로라면 향후 50년 동안 인구의 30%가 줄고 인구 구조도 급격히 고령화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출산율이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칼럼이 실렸겠나.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지난 18일 저출생 대책을 주요 공약으로 냈다. 양대 정당이 국가적 의제의 해법을 함께 도모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정책 실효를 높이기 위한 고민의 흔적도 보인다. 아빠에게 출산휴가 한 달을 의무화(국민의힘)한다거나 육아휴직을 신청만 하면 자동으로 쓰도록(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하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독박육아’ 부담이 크고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도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을 고려한 조처들이다.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결혼·출산지원금’과 같은 파격적 현금성 지원 공약(민주당)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냉담하다. 왜일까.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은 2.1명이다. 이에 못 미치면 ‘저출산 사회’, 1.3명 미만은 ‘초저출산 사회’로 본다. ‘아이를 적게 낳으라’는 가족계획 사업(1996년 종료)이 30년 넘게 벌어지는 동안에, 우리는 저출산 사회로 진입(1983년)하고 말았다. 이어 2002년 초저출산 사회로 들어서고 출산율이 1.08명으로 내려앉은 2005년에야 정부는 부랴부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수립에 나섰다. 열악한 보육 인프라를 깔고 부처별로 백화점식 대책이 앞다퉈 나왔다. 적어도 2015년까지는 출산율이 등락을 반복할지언정 더 악화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출산율은 이후로 내리 하향 곡선을 타며 뚝뚝 떨어졌다. 수백조원 예산에도 정책이 실효를 내지 못하자, 문제의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는 지적이 정부 안팎으로 쏟아졌다. 정부 대책 기조가 조금씩이나마 진일보해온 맥락이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층 일자리·주거 지원을 저출생 대책에 넣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처음으로 성평등이라는 키워드를 끌어올렸다. 단순한 출산 장려를 넘어 여성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8일 저출생 종합대책 발표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번에 여야 공약들을 톺아보면, 정치권의 저출생 문제에 대한 인식은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정책을 접지 않고 일하는 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준들, 아이를 낳을 마음이 없는데 첫째·둘째·셋째 아이에 따라 차등해서 현금성 지원을 한들 꿈쩍이나 할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청년들의 손에 당장 뭔가를 쥐여줘야 한다는 성급함만 앞서는 형국이다. “화장실 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화장실로 가는 길을 만들고 표지판을 만들고 휴게소를 만들고 화장실을 대리석과 보석으로 꾸미는 것”(이관후·정치학 박사)이나 다름없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이 큰데, 여전히 제도만 갈고닦아서야 되겠나.

최근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38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23 라이프앳홈)는 의미심장하다. 한국인은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즐겁다’는 비중이 전세계 1위,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웃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비중은 최하위였다. 개인 단위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 시대의 고단함이 배어 있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에게 결혼·자녀갖기는 노동자로서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사회가 여성의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면 새로운 가족균형이 나타나 출산율이 회복된다는 서구 사회의 교훈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저출생 대책’이란 용어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그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면 될 일 아닌가.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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